“제가 메달을 땄으니 이제 다들 잘할 겁니다. 스타트를 끊었으니 처져 있던 선수들이 제 경기를 보고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남자 펜싱 대표팀의 ‘맏형’ 최병철(31·화성시청)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후 “(9위에 그쳤던)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잘 풀리지 않은 탓에 충격이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희한하게 마음이 편했다”고 털어놨다.

최병철은 31일(현지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남자 플뢰레 개인전 3~4위전에서 안드레아 발디니(이탈리아)를 15-14로 꺾었다. 동메달을 목에 건 최병철은 2000년 시드니 대회의 김영호(남자 플뢰레 금메달), 이상기(남자 에페 동메달)에 이어 12년 만에 메달을 딴 남자 펜싱 선수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오심 판정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펜싱 대표팀에 주어진 메달이라 더 값지다.

8강전에서 오른발목을 다친 최병철은 초반에는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갔다. 선취점을 얻은 뒤 발디니에게 연이어 2점을 내줬으나 ‘역전의 명수’답게 다시 2점을 뽑아내 경기를 뒤집었다. 발디니가 심판에게 최병철의 도복에 이상이 있다며 강력하게 항의해 잠시 최병철이 장비를 교체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최병철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격을 퍼부어 9-5로 1세트를 마쳤다.

2세트에도 12-8까지 앞서 쉽게 동메달을 따는 듯했으나 발디니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37초를 남기고는 연달아 세 차례 공격을 허용해 14-14 동점에 몰리고 말았다. 최병철은 3세트가 시작되자마자 저돌적인 공격을 시도했으나 동시에 판독기 불이 들어와 점수를 따지 못하다 과감한 콩트라타크(역습)를 성공시켜 결승점을 뽑아냈다. 비디오 판독 끝에 심판들이 최병철의 승리를 선언하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