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로또의 저주
불세출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40여권의 저서를 남길 만큼 명석했다. 뛰어난 언변으로 프랑스 사교계에 진출한 그는 1757년 재정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던 루이 15세에게 로또(복권)사업을 타개책으로 제안했다. 첫해 60만프랑의 수익을 올려줬고 자신도 복권사업소 5곳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 그 뒤 일생은 122명에 달하는 여성 편력이다.

카사노바가 프랑스에 들여온 로또(Lotto: 행운이란 뜻)의 원조는 이탈리아다. 1530년 피렌체공국에서 처음 발행했다. 물론 고대에도 복권이 있었다. 진시황은 키노(Keno)라는 복권게임으로 만리장성 축조비용을 조달했고, 로마 황제들은복권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복권만큼 손쉬운 재원조달 수단도 없다.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고통(저항) 없는 세금’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복권기금이 없었다면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명문대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슬 퍼런 프랑스 혁명정부조차 1793년 로또가 빈민을 착취한다며 전면 금지했다가 불과 6년 만에 발행을 재개했을 정도다.

국내 최초의 복권은 1948년 올림픽복권이다. 14회 런던올림픽 선수단 파견비용 조달용이었다. 매주 발행하는 주택복권은 1969년 선보였다. 1990년대 즉석복권이 나오며 18종의 복권이 난립하자 정부는 2002년 12월 각 부처의 복권을 로또로 통합했다. 로또의 등장으로 2002년 9796억원이던 복권 판매액이 2003년 4배인 4조2341억원으로 불어날 만큼 광풍이 불었다. 지금도 연간 3조원의 복권 판매액 중 95%가 로또다.

7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40대가 지난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돈 때문에 아내를 구타해 입건되거나, 당첨금을 8개월 만에 탕진하고 금은방을 털다 감옥 신세를 진 당첨자들도 있다. 인생역전이 아니라 인생파멸이다. 해외에서도 당첨자들이 살인 피살 상해 파산 정신병 등을 겪는 로또의 저주가 비일비재하다.

로또 1등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로 벼락 두 번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대 로스쿨 조사에 의하면 1등 당첨자의 파산확률은 3분의 1에 이른다. UC버클리의 심리학자 캐머런 앤더슨 교수는 갑자기 불어난 재산으로 인한 행복감은 고작 9개월이라고 지적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불어난 재산)보다 주위의 존경과 인정 등 사회측정 지위가 더 결정적이란 얘기다.

일을 그르친다는 뜻의 ‘산통을 깬다’는 말은 조선시대 복권과 유사한 산통계(算筒契)에서 유래했다. 로또 돈벼락이 인생의 산통을 깰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누구나 평생 누리는 행복의 총합은 같은 모양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