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로존에 지금은 비가 내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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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는 EU통합 역사의 기반
위기때마다 회원국 결속 강화돼
정치통합 촉진제 작용 예상해야
김창범 < 주벨기에·EU 대사 >
위기때마다 회원국 결속 강화돼
정치통합 촉진제 작용 예상해야
김창범 < 주벨기에·EU 대사 >
수필가 김소운 선생이 좋은 바둑판에 대해 쓴 ‘특급품’이라는 글이 있다. 바둑판은 연하고 탄력이 있어 두세 판을 두고 나면 반면이 곰보같이 되다가도 곧 평평해지는 비자나무로 된 것이 상품인데 이상하게도 표면에 머리카락 같은 흉터가 보이는 것이 특급품이라고 한다. 무른 비자나무 바둑판은 곧잘 갈라지지만 정성껏 보살펴 벌어진 틈이 머리카락 같은 흔적을 남기고 다시 아물면 튼튼한 진품(珍品)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재정·금융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그 회원국들의 조치가 올바른 것인지부터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르고 처방이 난무해서 위기가 진정되고 있는지 더 심해지고 있는지 딱 부러지게 말하기도 어렵다. EU 주재 대사라고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EU와 그 회원국들의 노력은 특급품 바둑판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결국 흉터는 남겠지만 그로 인해 더더욱 강고하게 바뀔 것으로 믿는다. EU가 밟아 온 60년 통합의 과정과 일상 생활 곳곳에 녹아 있는 통합의 정도에 비춰 보면 유럽 통합은 그 어떤 위기도 꿋꿋이 견딜 수 있는 내성을 이미 갖췄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유럽 통합의 시작 자체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기에서 시작됐다. 전쟁의 참상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싸움의 대상이 됐던 석탄과 철을 공동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 유럽 통합의 시발이었다. 그 후 유럽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히려 통합을 강화해 이를 극복해왔다. 2009년 그리스 재정 위기의 발생과 전염 이후 EU와 그 회원국의 대응 조치는 일관되게 회원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방향을 취해 오고 있다.
유럽 통합의 과정을 요약하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인내와 타협’이 적절할 것이다. 석탄철강공동체, 단일시장, 유럽연합, 화폐통합, 최근의 정치 통합에 이르기까지 유럽 통합은 정체와 중단은 있었어도 후퇴나 포기는 없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이미 유럽 통합은 유로화의 존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그 회원국과 국민들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으며 생활 속에 녹아 든 유럽 통합의 효과로 인해 유로화 역시 쉽사리 그 존폐를 위협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는 생활 속 통합의 상징일 뿐 아니라 결정적인 매개체다. 유로화 탈퇴도 불사하겠다던 그리스 좌파당이 2차 총선에서는 결국 승리하지 못한 것이나 독일 국민 태반이 여타 회원국에 대한 금융 지원에 반대하면서도 유로화 존속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유로화가 단지 화폐가 아니라 통합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도 회원국 재정·거시 경제정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유럽 위기의 본질은 통화와 재정 통합의 괴리다. 통화는 통합됐으되 재정은 여전히 각국의 주권 사항인 까닭에 어느 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곧 전체 유럽의 통화 위기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유로화 출범 당시부터 지적된 것이나 재정은 주권 사항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 아무리 통합이 진전돼도 섣불리 이를 통제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유럽 위기는 역설적으로 이런 재정 통합, 나아가 궁극적인 정치 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국은 이제 재정 주권을 일정 부분 EU의 통제 아래 두기로 했으며 최근 유럽 정상회의에서는 은행 연합의 개시도 합의됐다.
통합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그러나 워낙 크고 복잡한 문제라 몇 가지 처방으로 단시일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근본적인 처방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의 시간 지체, 불가피한 응급처방과의 부조화, 효과와 역효과의 동시 발현 등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은 재정 통합이 강화된 형태로 진정될 것이다.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나 목침(木枕)감으로 전락해 버릴 바둑판을 명품으로 되살리는 데도 때로는 3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신중하게 기다려볼 일이다.
김창범 < 주벨기에·EU 대사 >
유럽의 재정·금융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그 회원국들의 조치가 올바른 것인지부터 전문가들의 평가가 다르고 처방이 난무해서 위기가 진정되고 있는지 더 심해지고 있는지 딱 부러지게 말하기도 어렵다. EU 주재 대사라고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EU와 그 회원국들의 노력은 특급품 바둑판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결국 흉터는 남겠지만 그로 인해 더더욱 강고하게 바뀔 것으로 믿는다. EU가 밟아 온 60년 통합의 과정과 일상 생활 곳곳에 녹아 있는 통합의 정도에 비춰 보면 유럽 통합은 그 어떤 위기도 꿋꿋이 견딜 수 있는 내성을 이미 갖췄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유럽 통합의 시작 자체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기에서 시작됐다. 전쟁의 참상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싸움의 대상이 됐던 석탄과 철을 공동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 유럽 통합의 시발이었다. 그 후 유럽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히려 통합을 강화해 이를 극복해왔다. 2009년 그리스 재정 위기의 발생과 전염 이후 EU와 그 회원국의 대응 조치는 일관되게 회원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방향을 취해 오고 있다.
유럽 통합의 과정을 요약하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인내와 타협’이 적절할 것이다. 석탄철강공동체, 단일시장, 유럽연합, 화폐통합, 최근의 정치 통합에 이르기까지 유럽 통합은 정체와 중단은 있었어도 후퇴나 포기는 없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이미 유럽 통합은 유로화의 존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그 회원국과 국민들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으며 생활 속에 녹아 든 유럽 통합의 효과로 인해 유로화 역시 쉽사리 그 존폐를 위협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는 생활 속 통합의 상징일 뿐 아니라 결정적인 매개체다. 유로화 탈퇴도 불사하겠다던 그리스 좌파당이 2차 총선에서는 결국 승리하지 못한 것이나 독일 국민 태반이 여타 회원국에 대한 금융 지원에 반대하면서도 유로화 존속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유로화가 단지 화폐가 아니라 통합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도 회원국 재정·거시 경제정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착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유럽 위기의 본질은 통화와 재정 통합의 괴리다. 통화는 통합됐으되 재정은 여전히 각국의 주권 사항인 까닭에 어느 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곧 전체 유럽의 통화 위기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유로화 출범 당시부터 지적된 것이나 재정은 주권 사항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 아무리 통합이 진전돼도 섣불리 이를 통제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유럽 위기는 역설적으로 이런 재정 통합, 나아가 궁극적인 정치 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국은 이제 재정 주권을 일정 부분 EU의 통제 아래 두기로 했으며 최근 유럽 정상회의에서는 은행 연합의 개시도 합의됐다.
통합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그러나 워낙 크고 복잡한 문제라 몇 가지 처방으로 단시일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근본적인 처방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의 시간 지체, 불가피한 응급처방과의 부조화, 효과와 역효과의 동시 발현 등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은 재정 통합이 강화된 형태로 진정될 것이다. 그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나 목침(木枕)감으로 전락해 버릴 바둑판을 명품으로 되살리는 데도 때로는 3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신중하게 기다려볼 일이다.
김창범 < 주벨기에·EU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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