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위기의 경제, 대공황 때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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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재정정책 여전히 논쟁 중
멀리 보되 과감한 조치 필요해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멀리 보되 과감한 조치 필요해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에 비하면 당일 주식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금융감독원은 서둘러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에 대한 대출이자 부담이 2조원 줄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좀 더 체감할 수 있도록 가계 1인당 10만5000원, 기업 한 곳당 65만원의 연간 이자부담이 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금감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준금리 인하효과가 제대로 반영되는지 보기 위해 은행들에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얼마나 내릴 것인지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고 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대기업들까지 위기경영을 선포할 정도로 경기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선제적 성격을 가져야 할 통화신용정책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한은의 주장처럼 선제적 성격의 금리인하는 아니었다. 이미 여러 경제지표들이 적신호를 보낸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한은 스스로를 비롯해 각종 경제전망기관에서 성장률을 빠르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교역조건 지표가 10년도 넘게 하락 중이다. 순상품교역지수가 지난 2분기에는 74.3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100을 수출한 것으로 볼 때 74.3만 수입해오고 있다면 국내 경제가 쪼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현상도 심각하다.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4조원을 밑돈 것은 2007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돈이 도는 정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6.2에서 올해 5월에는 22.2까지 하락했다. 예금은행 회전율도 크게 떨어졌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세계 경제 역사상 발생한 경기변동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으로 평가되는 1930년대 대공황의 악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다만 시대가 80년을 지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미국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들이 대규모 실업과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이 최악의 상황에 대해 케인스학파라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만들어낼 만큼 당시의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자본, 노동, 기술 같은 총공급만이 국민소득을 결정한다고 가정하는 고전학파 이론이 뭇매를 맞고 이른바 총수요가 경기침체를 결정 짓는 낮은 소득과 높은 실업의 원인이라고 설명됐다.
안타깝게도 80년이 지났지만 대공황에 대처하는 처방 논쟁은 비슷한 형태로 지금도 진행형이다. 인플레이션 타기팅 수준을 올려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수요증대 정책논리와 감세 등을 통해 가계와 기업이 더 소비하고 생산하게 해야 한다는 공급중시 정책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노동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상태였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0%나 감소했던 1933년과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과감한 정책 실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그때의 상황논리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가리게 되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팽창적 통화신용정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증가시킬 것이고 소비지출을 촉진시키기 위해 대규모 조세삭감 정책을 쓴다는 것도 거대한 정부부채의 존재와 인구구조의 고령화 추세로 채택이 어렵기 때문이다.
거창한 대공황 논리를 대지 않아도 한국 경제 현실은 충분히 어렵다.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위기론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번 한은의 금리인하는 이런 현실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과 경제정책 당국은 좀 더 큰 그림을 멀게 보고 정책을 써야 한다. 아마도 대선이 끝나고 새 경제정책팀이 자리를 잡으려면 족히 1년은 걸릴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통화신용정책이나 재정정책의 실효성이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인 수입과 제자리걸음인 수출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위기의 경제정책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대기업들까지 위기경영을 선포할 정도로 경기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선제적 성격을 가져야 할 통화신용정책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한은의 주장처럼 선제적 성격의 금리인하는 아니었다. 이미 여러 경제지표들이 적신호를 보낸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한은 스스로를 비롯해 각종 경제전망기관에서 성장률을 빠르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교역조건 지표가 10년도 넘게 하락 중이다. 순상품교역지수가 지난 2분기에는 74.3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100을 수출한 것으로 볼 때 74.3만 수입해오고 있다면 국내 경제가 쪼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현상도 심각하다.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4조원을 밑돈 것은 2007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돈이 도는 정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6.2에서 올해 5월에는 22.2까지 하락했다. 예금은행 회전율도 크게 떨어졌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세계 경제 역사상 발생한 경기변동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으로 평가되는 1930년대 대공황의 악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다만 시대가 80년을 지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미국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들이 대규모 실업과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이 최악의 상황에 대해 케인스학파라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만들어낼 만큼 당시의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자본, 노동, 기술 같은 총공급만이 국민소득을 결정한다고 가정하는 고전학파 이론이 뭇매를 맞고 이른바 총수요가 경기침체를 결정 짓는 낮은 소득과 높은 실업의 원인이라고 설명됐다.
안타깝게도 80년이 지났지만 대공황에 대처하는 처방 논쟁은 비슷한 형태로 지금도 진행형이다. 인플레이션 타기팅 수준을 올려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수요증대 정책논리와 감세 등을 통해 가계와 기업이 더 소비하고 생산하게 해야 한다는 공급중시 정책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 노동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상태였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0%나 감소했던 1933년과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과감한 정책 실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그때의 상황논리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본질을 가리게 되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다. 팽창적 통화신용정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증가시킬 것이고 소비지출을 촉진시키기 위해 대규모 조세삭감 정책을 쓴다는 것도 거대한 정부부채의 존재와 인구구조의 고령화 추세로 채택이 어렵기 때문이다.
거창한 대공황 논리를 대지 않아도 한국 경제 현실은 충분히 어렵다.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위기론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번 한은의 금리인하는 이런 현실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과 경제정책 당국은 좀 더 큰 그림을 멀게 보고 정책을 써야 한다. 아마도 대선이 끝나고 새 경제정책팀이 자리를 잡으려면 족히 1년은 걸릴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통화신용정책이나 재정정책의 실효성이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인 수입과 제자리걸음인 수출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위기의 경제정책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