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강진 유배 18년은 우리 학술사에 불가사의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500권이 넘는 경악할 성과도 따지고 보면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제자들과 집체작업한 결과였다. 주막집 뒷방 생활을 청산하고 9년 만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다산은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곳에서 만난 제자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양 미간에 잡털이 무성하고, 온몸에 뒤집어쓴 것은 온통 쇠잔한 기운뿐입니다. 발을 묶어 놓은 꿩과 같아 쪼아 먹으라고 권해도 쪼지 않고 머리를 눌러 억지로 주둥이와 낱알이 서로 닿게 해주어도 끝내 쪼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이랬던 그들이 두어 해도 되지 않아 조선 학술사의 금자탑을 세우는 드림팀의 일원으로 눈부시게 변모했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방법을 오늘의 교육현장에 도입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까.

다산이 제자를 길러낸 교학 방식은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단계별 교육이다. 다산은 단계별 학습을 중시했다. 글자를 익힐 때는 촉류방통(觸類旁通)의 방법으로 비슷한 부류끼리 정보를 계열화해서 습득하게 했다. 책 읽는 순서도 선경후사(先經後史), 즉 경전을 앞세우고 역사서를 나중에 읽어 수기(修己)를 먼저 한 후 치인(治人)의 단계로 나가는 차례를 강조했다. 작문 학습에는 과문(科文), 즉 과거시험을 위한 글보다 고문을 우선했다. 무턱대고 공부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차례와 절차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문심혜두(文心慧竇), 즉 슬기 구멍이 뻥 뚫려 머릿속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체계가 가동된다는 뜻이다.

둘째는 전공별 교육이다. 다산은 제자의 성품과 개성을 살펴 당시에 이미 전공 교육을 실행했다. 문학(文學)과 이학(理學), 즉 문예와 학술로 나눠 선택과 집중 방식의 교육으로 학습 내용을 차별화했다. 논리적 사고가 강하면 학술 방면에, 감성적 표현이 능하면 문학 쪽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각각의 전공마다 단계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학습 순서를 꼼꼼하게 정해주었다. 같은 전공자들끼리 경쟁 구도를 설정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셋째는 맞춤형 교육이다. 다산은 제자의 처지와 개성을 살펴 맞춤형 눈높이 교육을 펼쳤다. 개인별로 최적화된 매뉴얼을 제안하고, 상황에 따라 칭찬과 꾸지람을 적절히 활용해 그때그때 알맞은 대증처방을 내려주는 동기유발형 교육을 중시했다.

넷째는 실전형 교육이다. 평소 초서, 즉 카드 작업이나 베껴쓰기 과정을 통해 바탕공부를 다진 뒤 작업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실전 연습을 시키는 교학 방법이다. 다산은 무슨 작업을 하든지 먼저 핵심가치를 설정해 구체적인 작업 범위와 목표를 정했다. 이어 목차와 범례를 확정해서 작업의 전 과정을 이해시킨 후 초서 작업에 착수하게 했다. 다산의 작업이 대부분 이렇게 진행됐다.

다섯 번째는 토론형 교육이다. 문답과 토론을 통한 쌍방향 교육을 말한다. 다산은 공부에서 문답을 중시했다. 질문을 먼저 던져 답변을 끌어내고, 토론을 통해 논리적 사고와 문제의식을 강화시켰다. 고성사에서 아들 정학연과 겨울을 나며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승암문답(僧庵問答)’을 비롯한 다양한 저작들에 문답 방식으로 진행된 교육 현장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학습 내용을 기록으로 누적시켜서 지난날의 수준을 점검하고, 향후 방향을 잃지 않게 했다. 공부는 늘 쌍방향이어서 일방적인 법이 없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문제 제기 요령과 해결 능력을 동시에 갖춰나갈 수 있었다.

여섯 번째는 집체형 교육이다. 전체 작업공정을 역량에 따라 안배하되 역할을 분담해 공동작업으로 진행했다. 당시에 이미 이런 팀제 도입을 통해 효율의 극대화를 꾀한 것은 사뭇 놀랍다. 다산초당의 모든 작업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돌아나오면 상품이 완성되듯, 철저한 역할 분담에 의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를 제자 양성 프로그램화해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제자들의 학문적 성장을 돕는 멘토링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산의 제자들은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의 전체 프로세스에 집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저술과 편집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한문학 자료 등 수많은 고전에서 시대정신을 길어올리는 국문학자다.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다산의 재발견》《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삶을 바꾼 만남》《일침》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