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동대문 패션왕]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뚱뚱했던 김아중이 성형수술로 다시 태어난 후 예뻐진 자신을 뽐내기 위해 쇼윈도의 원피스를 바로 구입해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비즈 시폰 미니 드레스는 이후 ‘김아중 원피스’로 불리며 ‘완판’은 물론 몇 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김아중 원피스의 인기와 함께 이 드레스의 브랜드인 ‘제시 뉴욕(Jessi New York)’도 여성들 사이에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제시뉴욕은 새로운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한 패스트 패션 전략을 구사하되 고급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가격이 합리적인 매스티지 시장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제시 뉴욕은 현재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중국에서의 매출 180억 원을 올리는 등 이를 포함해 한 해 매출 550억 원의 강소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대문을 기반으로 의류 유통을 하다가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단위로 성장시킨 제시앤코의 전희준 대표의 지난 14년간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전희준 제시앤코 대표, 이탈리아 선진 시스템 '벤치마킹'
고가 중심 여성 의류 시장 틈새 공략

전 대표는 1990년대 초반 수입 의류를 유통하며 강남 쪽에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하며 패션 업계에 입성했다. 제일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친구와 손잡고 일하다 보니 전 대표는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패션 산업의 구조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단지 수개월 동안 이곳의 생리를 파악한 전 대표는 개발실과 디자인실을 만들며 하나 둘씩 자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겨갔다.
그가 브랜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계기는 이탈리아 패션 산업을 우연히 돌아본 것이었다. 전 대표는 “이탈리아 패션 산업은 창고형 쇼룸, 사무실, 세일즈 등이 하나로 묶여 원활하게 돌아가는 선진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며 “이를 보고 동대문시장 뒤에 건물을 빌려 개발뿐만 아니라 제조·포장을 빠르게 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시도해 봤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1998년 여성복 브랜드로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제시 뉴욕이 태어났다.

제시 뉴욕 브랜드가 론칭된 그때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여서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 고가의 여성 정장 브랜드가 많이 있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시 뉴욕은 고가 브랜드가 점령한 국내 여성 의류 시장에 틈새를 파고들었다. 과감한 디자인과 높은 퀄리티를 추구하되 가격이 합리적인 ‘매스티지’시장을 겨냥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근 패스트 패션이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는데 패스트 패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경제적인 가격이에요. 제품을 싸고 다양하게 계속 공급하는 게 승부수죠. 국내 여성복 트렌드는 대부분 유럽에서 오는데 이 때문에 고가로 설정되는 게 많았죠. 제시 뉴욕은 ‘여성들이 바라만 보던 패션들을 다가가기 쉽게 해주는 콘셉트’를 추구했어요.”

제시 뉴욕은 조금은 과감한 코드를 옷에 담았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코드를 한국화하지 않고 오리지널 그대로 녹여냈다. 이른바 국내에서는 조금 생소하고 앞선 패션을 과감히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유행에 가장 앞서 있는 패션 리더나 연예인들에게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끌게 됐다.

전 대표는 “제시 뉴욕 브랜드는 연예인들이 자주 입어 많이 알려졌는데 스타 마케팅을 특별히 한 것은 아니다”라며 “제시 뉴욕의 코드가 특별한 것을 원하는 연예인 취향과 맞다 보니 그들의 코디가 우리 옷들을 많이 찍어 간 듯해요”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아중 원피스는 사실 김아중이 우리 옷을 입은 줄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유행을 빠르게 소화하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하기 위해 전 대표가 신경 쓰는 곳이 디자인실이다. 디자인실은 전 대표의 부인인 남희정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초창기 멤버들을 중심으로 거의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발 빠르게 트렌드를 연구하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내놓는 데는 모두 베테랑이다. 전 대표는 “특히 초창기 멤버가 그대로이기 때문에 브랜드 콘셉트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꼽았다.

제시 뉴욕은 설립 당시부터 견고한 전국 유통망을 구축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전 대표는 당시 전국 각 지역에서 큰 규모로 의류 유통을 하고 있는 이들을 수소문해 제시 뉴욕의 특약을 제시했다. 제시 뉴욕과 특약 계약한 전국 33개 매장은 아직까지도 핵심 유통망이다. 그리고 제시 뉴욕은 백화점·쇼핑몰 등으로 유통망을 넓혀 현재는 110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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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 다시 기지개

제시앤코가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블루종’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했지만 고전하다가 2년 만에 접기도 했다. 이때 전 대표는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5년 말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 중국 상하이에 진출했고 이어 뉴욕과 유럽에까지 뻗어 나갔다.

“2009년까지 로스앤젤레스·뉴욕·런던·홍콩·일본 등에 진출하며 현지 반응을 파악했지만 생각하는 규모는 되지 않았어요. 현지화 작업을 수년 동안 진행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도 많았죠. 2008년 이후 세계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해외 사업에서 선택과 집중을 결정해야 했어요.”

제시 뉴욕이 그동안의 해외 사업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지금 주력하는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해외 진출할 때 중간 사업자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제시 뉴욕도 초기에는 이를 시도했지만 중간 사업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전 대표는 디자인·기획·마케팅·영업 등 모든 기능을 중국에 옮겨 수입 브랜드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재 중국 사무실에는 12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항주따샤, 신광천지 등 중국 최고 백화점에 총 30개 매장을 진입시켰다.


제시 뉴욕은 한 해 약 7만 피스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자체 공장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20개 공장에 아웃소싱을 줘 물량을 맞추고 있다. 한편 제시 뉴욕은 마케팅도 특별히 하지 않는다. 고객에게 신상품을 소개하는 트렌드 리포트 3만5000부를 격월로 제공하는 것이 마케팅의 전부일 뿐 광고 등은 하지 않고 있다. 제시 뉴욕은 현재 한국과 중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타 지역 진출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다.

“해외 진출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 손잡자는 제안이 있다. 현재 일본 진출을 시장조사하고 있고 내년께 동아시아, 2015년께 미주를 다시 두드려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 대표는 패션 중소기업 최초의 상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제시 뉴욕은 국내외에서 자리 잡았고 재정도 건강한 편”이라며 “국내 패션 기업들은 금융을 만나지 못해 다소 약한 점이 있는데 2015년쯤 가능하다면 홍콩 시장에 상장해 패션 중소기업으로서 효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