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배우면서 걸으면 즐겁지 아니한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조선시대 문장가 유한준 선생의 말이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다는 뜻인데 어쩌면 여행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근래 몇 년 주말마다 강원도 고향에 내려가 온전히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여행길로 ‘바우길’을 탐사하고 있다. 처음 길을 낼 때는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휴식과 건강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시골 마을 사이를 잇는 옛길을 탐사하다 보니 길이 지나는 마을의 활기를 찾게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길 위의 행인들이 붐벼 길이 빛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나는 마을이 예전처럼 살아나야 길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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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길과 마을이 함께 살아날 수 있겠는가. 길이 지나는 곳이 산골과 바닷가 마을인 만큼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수산물을 길을 걷는 사람들과, 또 도시의 소비자들과 바로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할 수도 있겠고, 또 재배에서 출하까지 전 과정을 옆에서 직접 지켜봐 믿을 만한 농장의 경우 ‘바우길 농장’ 레벨로 신뢰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내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어려운 숙제를 받은 셈인데, 최근 아주 진실하고 든든한 협력자를 만났다.

바로 지역사회 대학과의 협력이다. 처음엔 지역에 있는 대학의 교수들이 주말마다 바우길을 걸으러 나왔다. 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길과 마을이 또 길과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방안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학 총장도 본인을 누구라고 밝히지 않고 다른 참여자들과 똑같이 점심을 싸들고 여러 번 길 걷기에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과 길 단체가 함께 힘을 합쳐 공동으로 지역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길 하나를 더 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우리나라엔 지역마다 대학이 있지만 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동은 빈번하게 이뤄져도 사실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어떤 경우는 지역사회와 대학이 서로 담을 쌓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어떤 대학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지역사람들도 그 대학 출신이 아니면 자기지역 대학을 늘 담장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 캠퍼스 안으로 한번 들어가볼 기회도 없다. 지자체와 대학의 관계도 그러하고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런 차에 정말 뜻밖의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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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기 좋아하는 교수들과 대학 산악부 학생들, 바우길 탐사대가 힘을 합쳐 강릉원주대 캠퍼스 안에서 출발해 학교의 뒷동산을 넘어 오죽헌, 선교장,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나고 자란 초당 생가마을까지 가는 숲길 및 호수길과 들길을 연결했다.

출발지를 학교 앞으로 할 것인가, 캠퍼스 안으로 할 것인가를 정할 때도 학교가 지역사회에 대해 문을 닫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이 길로 지역주민들이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나 일상복 차림으로 이웃 나들이하듯 학교 안으로 편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 걷기 좋은 길들을 찾으려들면 또 얼마나 많겠는가. 당장 바우길만도 대관령에서부터 경포대와 정동진을 잇는 10여개의 코스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학과 지역사회 단체가 서로 스밈과 소통의 조화로 함께 만들어낸 길은 이것이 처음이다. 어쩌면 세계에서 처음일지 모른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부터 출발해 젊은이들의 낭만이 함께하는 대학 원룸촌을 지나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문화유산 도시 강릉의 자연과 역사와 미래를 함께하는, 강릉 선비문화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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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름도 대학 캠퍼스에서 출발하는 이 길의 특성에 따라 ‘학이시습지 길’로 정했다. 공자의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인용한 말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그것이 길 위에서의 일이라면 더욱 즐겁지 아니한가.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