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로 0.25% 포인트 내림으로써 사상 최초로 1% 미만의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다.

ECB는 기준 금리 인하와 함께 최저대출 금리를 1.75%에서 1.5%로 내렸고 예금금리는 0∼0.25%로 하향 조정했다.

이날 중국 정부도 한 달 만에 기준 금리를 0.25% 기습적으로 인하했으며 영국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는 동결하되 500억 파운드를 푸는 추가적인 양적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조율은 없었다"며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나온 호재에 시장은 두 팔 벌려 환영해야 마땅함에도 냉랭했다.

유럽 주요 증시는 ECB의 금리 인하 결정 발표 직전 1% 포인트 가까이 상승했으나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 이후 하락으로 반전하며 실망감을 반영했다.

무엇보다도 "유로존 경제 전망에 대한 하방 위협이 구체화했다"는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 기대감을 키워왔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장의 반응이 기대 이하인 것은 유럽 통화정책 수장의 이 같은 비관적인 전망도 이유이겠지만 이보다는 금리 인하가 이미 시장에서 예상됐던 것으로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달 금리 동결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일부 이사들이 금리 인하를 선호했다"면서 이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시장이 이날 원했던 것은 금리 인하와 더불어 3년 만기 초장기대출 (LTRO) 프로그램 재가동 등 유로존 소방수로서 ECB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드라기 총재는 "비 표준적(non standard)인 조치는 일시적일 뿐"이라며 향후에도 이 같은 직접 개입을 통한 부양책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12월과 2월 1년 만기 대출을 3년으로 연장하는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한후 독일 중앙은행으로부터 "본업인 물가 안정에 충실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독일의 지지를 받아 ECB 총재 자리에 오른 드라기 총재가 시장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반란을 도모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많지 않다.

더구나 지난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은행권에 대한 ECB의 감독권을 강화하는데 합의가 이뤄졌으며, ECB에 힘을 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이번 금리 인하가 가능한 것은 드라기 총재가 "인플레이션 위험은 중기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라고 밝혔듯이 경기 둔화에 따른 물가 인상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신용이 악화된 은행들 사이에 자금이 돌지 않기 때문에 신용경색을 해소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 PFA 펜션의 수석 전략가인 비톨트 바르케는 블룸버그 통신에 "대출 금리가 낮아진 것은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ECB가 재정위기에 맞설수 있는 수단이 고갈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박창욱 특파원 pc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