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빌어먹을 입자' 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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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137억년 전 쯤 빅뱅이 일어났을 때 ‘신(神)의 입자’가 생성됐다. 신의 입자는 다른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덕에 입자들은 각자의 질량을 받아들고 물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비롯해 풀 나무 별까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이렇게 생겨났다.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인 ‘표준모형이론’의 골격이다.
표준모형이론에서 세상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두 부류다. 서로 떨어져 있으려는 성질을 지닌 기본입자 ‘페르미온’ 12개와 뭉치려는 성질의 매개입자 ‘보존’ 4개다. 이들 입자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질량이 있어야 한다. 1964년 이들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가상의 존재를 제안한 이가 바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다. 이 입자에 ‘힉스(higgs)’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다.
그동안 실험을 통해 페르미온 12개와 보존 4개는 모두 발견됐다. 하지만 힉스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아 물리학자들의 애를 태웠다. 여러 정황 증거와 간접 증거만 나왔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노벨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이 1993년 입자에 대한 책을 써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제목을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붙였을까. 출판사 측이 그대로 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바람에 최종 제목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바뀌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힉스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데 100달러를 걸었다.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그래야 훨씬 더 신나는 일이 전개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호킹 박사의 베팅과 달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거대 강입자가속기(LHC)에서 입자 충돌실험을 한 결과 힉스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들떠 있다. 질량이 약 125~126기가전자볼트로 힉스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에 포함된다고 한다. 존재 확률로 따지면 300만번의 실험에서 한 번 오류가 발생하는 수준인 99.99994%다. 데이터 정확도가 과학적 발견이라 부를 수 있는 99.9999%를 넘어선 것이다.
과학계가 흥분하는 것은 그동안 물리학자들이 쌓아온 이론체계가 맞아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자연계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왔다는 의미도 된다. 빅뱅 이후 지금까지 우주 탄생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도 생긴다. 다만 CERN은 이 입자가 기존 이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입자일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추가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보완한 다음 연말 이후에 내리기로 했다. 과연 ‘빌어먹을 입자’가 ‘신의 입자’로 인정받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표준모형이론에서 세상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두 부류다. 서로 떨어져 있으려는 성질을 지닌 기본입자 ‘페르미온’ 12개와 뭉치려는 성질의 매개입자 ‘보존’ 4개다. 이들 입자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질량이 있어야 한다. 1964년 이들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가상의 존재를 제안한 이가 바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다. 이 입자에 ‘힉스(higgs)’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다.
그동안 실험을 통해 페르미온 12개와 보존 4개는 모두 발견됐다. 하지만 힉스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아 물리학자들의 애를 태웠다. 여러 정황 증거와 간접 증거만 나왔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노벨상을 받은 미국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이 1993년 입자에 대한 책을 써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 제목을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붙였을까. 출판사 측이 그대로 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바람에 최종 제목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바뀌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힉스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데 100달러를 걸었다.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그래야 훨씬 더 신나는 일이 전개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호킹 박사의 베팅과 달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거대 강입자가속기(LHC)에서 입자 충돌실험을 한 결과 힉스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들떠 있다. 질량이 약 125~126기가전자볼트로 힉스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에 포함된다고 한다. 존재 확률로 따지면 300만번의 실험에서 한 번 오류가 발생하는 수준인 99.99994%다. 데이터 정확도가 과학적 발견이라 부를 수 있는 99.9999%를 넘어선 것이다.
과학계가 흥분하는 것은 그동안 물리학자들이 쌓아온 이론체계가 맞아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자연계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왔다는 의미도 된다. 빅뱅 이후 지금까지 우주 탄생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도 생긴다. 다만 CERN은 이 입자가 기존 이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입자일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추가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보완한 다음 연말 이후에 내리기로 했다. 과연 ‘빌어먹을 입자’가 ‘신의 입자’로 인정받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