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야 정당이 ‘정치게임’에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철학도 없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반(反)대기업 정서를 자극, 표심잡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3일 “정치권이 양극화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들고 나온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기업활동마저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연말 대선 분위기에 편승해 포퓰리즘식 재벌 때리기로 갈까 우려된다”며 “정치권만의 공방에서 그치지 않고 재계의 입장도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일방적인 대기업 규제 정책을 쏟아내기보다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 정리와 양극화 원인 진단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명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각 정당의 생각도 모두 달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야권 내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재벌해체’에, 민주통합당은 ‘재벌의 경영권 세습 방지’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민주화 정책 방향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새누리당은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단가 인하 등 ‘불공정 행위 근절’에 방점을 찍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 대기업이 아니고 오너들의 경영성과가 전문경영인보다 뛰어나다는 국내외 사례와 객관적인 통계 데이터가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대기업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연구자들이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대기업 매출액과 국내총생산(GDP)을 거론하며 오해를 부추기고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며 “순환출자 등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바뀌어온 법률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상무)은 “15년 전 DJ정부 출범 때 나왔던 얘기들이 왜 다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세계 각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활성화 관련 법률을 입안하는데 우리만 다른 길로 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걱정했다.

황인철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양극화 해소라는 경제민주화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시장경제의 본질인 자율성을 침해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와 경총은 조만간 경제민주화 등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건의사항 등을 담은 의견서를 여야 정당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