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25일 간부회의에서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은과의 정책 공조를 적극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반면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3월 “가계부채 문제는 금리정책보다 다중채무자 해결이 우선”이라고 했고, 최근에도 “가계부채의 질을 악화시키는 계층에 대한 미시적 대책이 우선 집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말 911조원에 이른 가계부채의 심각성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금융위가 작년 6월 말 연착륙대책을 내놓았음에도 9개월 새 35조원이 더 늘었다. 가계부채는 지난 10여년간 연평균 10% 이상 증가해 소득증가 속도의 2배였고, GDP 대비 87%로 OECD 평균(76%)을 훨씬 상회한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한은도 지난 4월 보고서에서 가계소득 중 이자로 내는 돈의 비율(이자상환비율)이 2009년 2분기 2.5%를 넘었고 작년 4분기엔 2.8%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이 비율이 2.5%를 넘으면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어 폭발 임계점에 와 있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두 수장의 발언은 서로 상대에게 제 역할을 하라고 촉구하는 모양새로 볼 수밖에 없다. 김석동 위원장이 언급한 한은과의 정책공조가 통화정책 말고 뭐가 있으며, 김중수 총재가 주문한 미시적 대책은 금융위·금감원의 감독책임을 거론하는 것에 다르지 않다. 가계부채가 폭증한 원인과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다. 지금 와서 금리정책을 거론하거나, 허술한 감독책임을 꼬집어본들 감정싸움밖에 될 것이 없다. 이래서야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겠다는 정부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대내외 경제여건상 가계부채 잡자고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년연속 3%대 저성장 속에서 일자리 창출로 가계부채를 해결하자는 것도 공허하다. 정책당국이 지혜를 모으지 못한다면 ‘국민부채 탕감’식의 포퓰리즘이 나올 지경이다. 그때 가선 무슨 말씀들을 하시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