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19일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미군은 대전지역 전투 중 연락이 두절된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 구출에 나섰다. 대전은 이미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미군은 딘 소장이 대전역 주변에 있을 것으로 판단, 구출작전을 위해 충북 옥천군 이원역에 있던 우리 기관사들에게 ‘SOS’를 쳤다. 이에 김재현 기관사 등 3명이 자원했다. 김 기관사는 미군 가필드 중위가 이끄는 33명의 특공대를 열차(미카-3-129호 증기기관차)에 태우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미군은 10명의 목숨을 잃는 악전고투 끝에 대전역에 도착했으나 딘 소장을 구하긴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이원역으로 되돌아가던 특공대는 북한군의 집중 사격을 받아 미군 22명이 추가로 전사했고, 김 기관사도 8발의 총탄을 맞고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미군은 한 명만이 생존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 같은 김 기관사의 공로를 인정해 26일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한다. 훈장의 공식명칭은 ‘특별민간봉사상’으로 미 국방부가 미군을 위해 공헌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격이다. 한국인 수상자는 고인이 처음이다. 서훈행사는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존 D 존슨 미8군사령관과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 주관으로 실시된다.

김 기관사는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44년부터 철도청(현재 코레일) 기관사로 일했다. 부인 이규선 씨(91)와 함께 딸 제권씨(66), 아들 제근씨(64) 등 1남1녀를 남겼다. 아들과 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도공무원이 됐다. 김 기관사의 외손자인 홍성표 씨(39)도 코레일에서 부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다.

홍씨는 25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와 당시 4살이던 어머니, 2살이던 외삼촌이 매우 힘들게 살았다”며 “현재 외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외할아버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매우 기쁘다. 어머니가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1978년 김 기관사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김 기관사는 1983년 철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