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하춘화·박찬호 '아시아 자선왕'
“이 돈을 다 모아봤자 부자밖에 더 되겠어요.” 이종환 삼영화학 회장(89)의 기부 철학이다. 그는 지난달 서울대 도서관 신축 사업에 600억원을 내놨다. 2000년 관정 이종환교육재단 설립 후 그가 기부한 금액은 총 80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의 별명은 ‘기부왕’. 그는 재산 95%를 사회에 환원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일(현지시간) 이 회장을 ‘아시아 기부왕 48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이 회장과 함께 임업인 손창근 씨(83), 가수 하춘화 씨(57), 야구선수 박찬호 씨(39)도 명단에 올랐다. 기부 철학과 금액,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이 기준이다. 포브스는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을 쓴 사람만 대상으로 했다”며 “기부에는 우열이 없기 때문에 순위는 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포브스는 이 회장에 대해 “기부 규모뿐만 아니라 철학이 독특하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여러 학문에 장학금을 지원하되 실용 학문인 의대·법대에는 돈을 쓰지 말라”고 말해왔다. 이 회장은 또 가정 형편보다는 가능성을 우선해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지인들이 ‘사정이 딱한 학생이니 잘 챙겨 달라’고 부탁해도 기준에 못 미치면 절대 뽑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임업인 손창근 씨는 시가 1000억원대의 임야를 지난 4월 국가에 기증했다. 손씨는 “다음 세대까지 온전하게 보호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사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소장 중이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도 이 박물관에 기탁했다. 그럼에도 손씨는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임야 기부도 산림청에 대리인을 보내 조용히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가수 하춘화 씨가 데뷔 후 기부한 금액은 약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선공연을 연 것도 수백 번. 연예인 기부가 흔치 않던 1970~1980년대 ‘자선공연’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것도 하씨의 공으로 평가받는다. 박찬호 씨는 지난해 12월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면서 연봉 2400만원 전액을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구단이 제시한 옵션 등 6억원도 야구발전기금에 기부했다. 박씨의 기부 입단은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박찬호, 어린이를 위해 던진다(Park pitches for the kids)’란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는 1997년 박찬호장학회를 설립, 15년간 300여명의 학생들을 지원해왔다.

이 밖에 재일교포인 한창우 마루한 회장(81)도 명단에 들었다. 한 회장은 1990년 만든 한철문화재단의 기금 규모(설립 당시 30억원)를 조만간 1400억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내가 번 돈은 전부 한·일 양국의 우호 발전을 위해 쓸 것”이라고 말해왔다. 짐 톰슨 크라운월드와이드 회장은 캄보디아 도서관 설립 등에 35만달러를 기부했다. 장룽파(張榮發) 에버그린그룹 창업자도 매달 33만5000달러를 자선 프로젝트에 투입, 기부왕으로 뽑혔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