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빗나간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
20일(현지시간) 뉴욕주 나소카운티에서는 미국의 두 번째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해 12월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세워진 1호 기림비가 일본 정치인들의 철거 로비로 주목을 끈 상황에서, 뉴욕주에 2호 기림비가 세워지는 데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교민들은 뭔가 찜찜한 표정이었다. 이날 제막식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지역 주민들 위주로 조촐히 열렸던 1호 제막식과는 영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우선 강운태 광주시장이 제막식의 주요 인사로 참석했다.

이번 기림비 건립을 주도한 교민단체 한미공공정책연구회는 광주광역시를 비석 제작에 참여시켰다. 한국홍보전문가를 자처하는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와 가수 김장훈 씨도 비석 디자인에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정치인과 유명인들을 기림비 제작에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셈이다.

한미공공정책연구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주류 사회의 주목과 지지를 이끌어 낸 미주한인유권자센터의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2007년 미국 연방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정부가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기림비 철거 로비를 묵살했던 건 결의안과 기림비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 의회와 시정부를 설득한 사람이 한국 정치인과 유명인이 아니라 미국 내 투표권, 즉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한인 유권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 감정 싸움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인권 문제로 규정하고, “인권 수호는 미국의 가치와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로 정치인들을 설득했다.

이 풀뿌리 운동에 참여했던 뉴저지의 한 교민은 “기림비 2호 제작에 광주시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이 운동이 한국 국익을 대변하고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 미국 정치인들은 우리를 도울 명분을 잃는다”고 말했다.

[취재수첩] 빗나간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
이 교민은 “일본 정치인들이 한국과 중국 정부가 미국 내 위안부 관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일부 유명인들의 공명심과 쇼맨십이 미국 내 한인 유권자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