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파산한 상태다.” 재정 전문가인 로런스 코틀리코프 미 보스턴대 교수는 직설적이다. 그는 미국 복지정책의 암울한 현재와 미래 사정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얘기를 꺼내며 “미래세대를 더 이상 학대하지 마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새 책《세대충돌》에서다. 선거 때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복지정책과 관련해서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저자는 미 정부의 부채는 알려진대로 11조달러 선이 아니라고 입을 떼며, ‘재정격차’ 개념을 꺼내든다. 재정격차는 ‘미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지출해야 할 금액과 세금 수입의 차액’이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각종 복지 프로그램으로 질 부담을 포함시킨 ‘재정격차’를 211조달러로 계산한다.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려면 앞으로 211조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는 뜻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미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복지프로그램의 재정을 100% 확충하려면 지금 당장 연방세금을 64%, 그것도 영원히 인상해야 한다. 지출삭감을 통해 해결한다면 공식부채에 11조달러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출을 제외한 모든 연방지출을 40%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다.

지금 당장 이렇게 세금을 올리거나 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베이비부머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을 더 기다린다면 우리 후손들이 세금을 93% 올리거나 지출을 53%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정적 자손학대’란 말이 나올 판이며 ‘세대충돌’까지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표만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인들은 세대간의 ‘행운의 편지’를 계속 돌리고 있고, 자손들에게 넘기는 청구서에 관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미국의 재정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로 인구 고령화를 꼽는다. 미국인의 수명은 크게 늘어났다. 지난 100년간 미국인 남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47.9년에서 74.9년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요즘 태어나는 신생아들이 중년이 되는 2050년에는 100세 이상 노인이 60만명을 넘어서, 100세 주민만으로 워싱턴DC 인구를 채울 수 있는 추세란 것이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보면 장수만큼 무서운 현상도 없다”고 우려한다.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들여야 할 돈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에서다.

미국 사회보장제도인 소셜 시큐리티(연방정부의 은퇴연금, 사망보험, 장애연금 등)의 평균 지급액은 현재 1.172달러다. 맥도날드 1~4년차 근로자의 평균 시급은 8달러다. 이들이 내는 소득세는 6.2%로, 시간당 50센트쯤이다. 은퇴자 1명의 소셜 시큐리티 수표를 지급하는 데 한 달에 120시간가량 근무하는 맥도날드 근로자 10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까지 고려하면 은퇴자 1명을 부양하는 데 맥도날드 근로자 17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저자는 “이들 복지프로그램에 낀 거품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그 거품이 우리 자식들의 얼굴 앞에서 터질 시한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의 금융시스템과 건강보험, 세금제도, 사회보장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금 부문에서는 소득세를 소비세와 상속세로 대체하고, 소셜시큐리티는 개인보장 프로그램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미국은 복지정책의 변화가 시급한데도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기성세대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만일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고수한다면 젊은이들을 해치든가, 노인들을 해치든가, 아니면 둘 다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