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빈 라덴' 파편맞은 소아마비 퇴치운동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년 퇴치노력 물거품 될 위기
美·파키스탄 갈등으로 지원 끊겨
그릇된 신념이 또다른 오류 낳아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美·파키스탄 갈등으로 지원 끊겨
그릇된 신념이 또다른 오류 낳아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5월 말 파키스탄에서 샤킬 아프리디(의사)가 반역죄로 33년형을 언도받았다. 바로 다음날 미국 상원의 한 분과위원회는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금을 3300만달러 삭감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33년형에 대한 항의로 1년에 100만달러씩을 삭감한 것이다. 그가 반역죄에 걸린 것은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1957~2011) 색출에 협력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던 미국은 10년 만인 작년 5월 그 두목 빈 라덴을 파키스탄 서북방에서 색출해 처형했다. 미국에는 대단한 경사로 오바마의 성명도 나왔지만, 파키스탄으로서는 주권침해의 망신이었다.
당연히 미국·파키스탄의 외교분쟁이 생겼고, 미국에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이 의사는 반역자가 됐다. 그 분쟁은 두 나라 외교관들이 알아서 정리할 터,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이 소아마비를 정복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를 세상에서 없애는 데 성공했다. ‘곰보’를 만들어 주던 천연두는 구시대의 대표적 전염병이었다. 천연두가 콜럼버스 이후 신세계로 넘어가자 전혀 면역력이 없던 신세계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오죽하면 16세기 중반 지금의 페루 일대에 있던 신세계 최대의 잉카제국은 수만명의 군대를 갖고도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수백명에게 삽시간에 멸망했을까.
천연두는 1798년 영국 제너의 백신 발명으로 우두가 시작되고, 30년 뒤 정약용의 실험을 거쳐, 1880년 지석영에 의해 우두는 이 땅에도 정착했다. 지석영 이후 꼭 1세기 만에 천연두가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속이 바로 1988년의 소아마비 퇴치운동이다. 반세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해마다 5만8000명이 이 병에 걸렸고, 한국에서도 해마다 2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그 예방에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1950년대 미국의 소크와 세이빈의 백신 발명이었다. 1960년대 이후 그 보급으로 소아마비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한국에서는 1984년 이후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 2000년 10월 소아마비 종식을 선언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소아마비에서 해방됐으며, 제3세계 몇 곳에서 2001년 환자 483명이 생겼다할 정도였다. 올해 전 세계의 소아마비는 거의 사라졌고 단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약간의 발병이 있었다.
그 단계에서 아프리디 사건은 이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붓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아프리디가 백신 보급을 위해 채집한 그 지역 주민의 유전자 정보 덕분에 빈 라덴과 측근들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파키스탄 의사가 미국정보기관과 어느 정도 협조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이 고약해졌다.
일부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백신은 전염병 박멸이 아니라 이슬람을 멸종시키려는 서구의 음모라 주장하고 나섰다. 인도에서는 백신이 보급되자 수만명의 변종 소아마비가 발생했다는 연구도 나왔다. 물론 이런 반발은 백신 보급과 관련된 제약회사의 이권 개입, 정치가들의 이해 등이 드러나 더욱 의심을 북돋운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주춤거리다가는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몇 년 안에 다시 전 세계로 퍼질 수도 있다. 20여년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판이다. 이미 파키스탄에선 소아마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CNN이 지난 7일 보도했다. 의학의 발달은 질병을 한 가지씩 박멸할 수 있겠지만, 그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진화한다. 새로 등장하는 질병이 꼬리를 물고 인간을 괴롭힐 것도 분명하다.
여기 드러나는 사실은 인간 자신의 무지(無知+無智)다. 한번 어떤 믿음에 빠져든 사람은 그 신념을 바탕으로 온갖 불합리한 상상을 덧칠해 그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다진다. 미국 CIA의 경우를 근거로 소아마비 백신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그런 경우다. 외국보다 더 걱정스런 경우는 새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우리 국회의원들인 듯하지만 ….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던 미국은 10년 만인 작년 5월 그 두목 빈 라덴을 파키스탄 서북방에서 색출해 처형했다. 미국에는 대단한 경사로 오바마의 성명도 나왔지만, 파키스탄으로서는 주권침해의 망신이었다.
당연히 미국·파키스탄의 외교분쟁이 생겼고, 미국에 나라를 팔아넘겼다는 이 의사는 반역자가 됐다. 그 분쟁은 두 나라 외교관들이 알아서 정리할 터,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이 소아마비를 정복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를 세상에서 없애는 데 성공했다. ‘곰보’를 만들어 주던 천연두는 구시대의 대표적 전염병이었다. 천연두가 콜럼버스 이후 신세계로 넘어가자 전혀 면역력이 없던 신세계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오죽하면 16세기 중반 지금의 페루 일대에 있던 신세계 최대의 잉카제국은 수만명의 군대를 갖고도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수백명에게 삽시간에 멸망했을까.
천연두는 1798년 영국 제너의 백신 발명으로 우두가 시작되고, 30년 뒤 정약용의 실험을 거쳐, 1880년 지석영에 의해 우두는 이 땅에도 정착했다. 지석영 이후 꼭 1세기 만에 천연두가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속이 바로 1988년의 소아마비 퇴치운동이다. 반세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해마다 5만8000명이 이 병에 걸렸고, 한국에서도 해마다 2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그 예방에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1950년대 미국의 소크와 세이빈의 백신 발명이었다. 1960년대 이후 그 보급으로 소아마비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한국에서는 1984년 이후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 2000년 10월 소아마비 종식을 선언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소아마비에서 해방됐으며, 제3세계 몇 곳에서 2001년 환자 483명이 생겼다할 정도였다. 올해 전 세계의 소아마비는 거의 사라졌고 단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약간의 발병이 있었다.
그 단계에서 아프리디 사건은 이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붓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아프리디가 백신 보급을 위해 채집한 그 지역 주민의 유전자 정보 덕분에 빈 라덴과 측근들의 소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파키스탄 의사가 미국정보기관과 어느 정도 협조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이 고약해졌다.
일부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백신은 전염병 박멸이 아니라 이슬람을 멸종시키려는 서구의 음모라 주장하고 나섰다. 인도에서는 백신이 보급되자 수만명의 변종 소아마비가 발생했다는 연구도 나왔다. 물론 이런 반발은 백신 보급과 관련된 제약회사의 이권 개입, 정치가들의 이해 등이 드러나 더욱 의심을 북돋운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주춤거리다가는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몇 년 안에 다시 전 세계로 퍼질 수도 있다. 20여년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판이다. 이미 파키스탄에선 소아마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CNN이 지난 7일 보도했다. 의학의 발달은 질병을 한 가지씩 박멸할 수 있겠지만, 그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진화한다. 새로 등장하는 질병이 꼬리를 물고 인간을 괴롭힐 것도 분명하다.
여기 드러나는 사실은 인간 자신의 무지(無知+無智)다. 한번 어떤 믿음에 빠져든 사람은 그 신념을 바탕으로 온갖 불합리한 상상을 덧칠해 그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다진다. 미국 CIA의 경우를 근거로 소아마비 백신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그런 경우다. 외국보다 더 걱정스런 경우는 새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우리 국회의원들인 듯하지만 ….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parkstar@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