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ㆍ스페인 일시적 유로존 탈퇴가 유럽위기 유일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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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전격 구제금융
특별 인터뷰 - 프랭클린 앨런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특별 인터뷰 - 프랭클린 앨런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환율조정 통해 위기 탈출
그리스 · 스페인, 화폐가치 떨어뜨려…수출 경쟁력 회복후 유로존 복귀해야
韓, 원화 절하통해 외환위기 극복…英, 대공황때 금본위제 탈피 ‘고성장’
중앙은행 금리인하 효과 제한적
일본처럼 장기 경쟁력 상실…좀비 은행 · 좀비 기업 양산할 위험 커
시장원리 통한 구조조정으로 경제 전반에 걸쳐 자생력 키워야
금융위기 및 유럽 전문가인 프랭클린 앨런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56)가 “그리스와 스페인의 일시적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가 유럽 위기를 해소할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자국의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회복한 뒤 다시 유로존에 복귀해야 한다는 것.
앨런 교수는 9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원화 가치 하락 덕분이었다”며 “그리스와 스페인도 환율 조정과 산업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도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 대신 구조조정으로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세계 경제의 시선이 각국 중앙은행에 쏠려 있다.
“위기 대처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저금리 정책은 짧은 기간에는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 일본처럼 경제 전반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좀비 기업과 좀비 은행이 많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미국도 벌써 수년째 저금리를 지속해왔고 적어도 2014년까지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위험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금리를 동결한 것은 옳은 선택인가.
“그렇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ECB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정치인들이 유로존을 어떤 형태로 유지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유럽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재정통합은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최소한 10~20년 걸리는 프로젝트다. 리스본 협약(유럽연합 미니헌법·2009년 발효)에 10년이 걸렸다. 재정통합은 그보다 훨씬 큰 변화를 수반한다. 그런데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스페인에서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우려되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문제도 있다. 생각하는 것보다 시장 상황이 더 안 좋다.”
▷그리스의 일시적인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이유는.
“유로존에 남기 위해 그리스나 스페인 등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임금을 내려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 때문에 임금을 내릴 수 없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5%에 달하는데도 임금이 계속 오르고 있다. 그리스 경제 규모는 4~5년 전에 비해 8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정부 지출도 계속 줄고 있다. 한동안 성장이 어려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와 스페인 젊은이들의 삶은 파괴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극단주의적 정치세력들이 힘을 얻고 있다. 군부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에서 군사정권(1967~1974년)이 권력을 잡았던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그렇다. 한국의 경험이 좋은 예다. 한국은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1분기에 성장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일본과 달리 원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30년 대공황 당시 영국은 금본위제를 폐지해 파운드화를 평가절하시켜 1920년대보다 더 많은 성장을 이뤘다. 그리스도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화폐(드라크마·옛 그리스 화폐) 가치가 크게 절하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성장률과 산업 경쟁력을 회복해 10~15년 후에 유럽안정성장협약(SGP) 조건을 맞추면 다시 유로존에 들어오면 된다.”
▷하지만 그리스는 수출 산업이 다양하지 않다.
“드라크마화의 가치는 유로에 비해 50~60% 하락할 것이다. 그러면 우선 여행산업이 붐을 이룰 것이다. 그리스는 복제약 등 경쟁력 있는 산업도 가지고 있다. 그리스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구매력 평가 기준(PPP)으로 2만7000달러에 달한다. 2만9000달러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충분히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인도도 그리스처럼 수출 산업이 없었지만 1990년대 초반의 구조 개혁 이후 10년 동안 GDP 대비 수출 비중을 두 배 이상 늘렸다. 그리스도 성장할 기회가 있다.”
▷유로존을 탈퇴하면 당장 그리스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것 같다.
“2001년 디폴트를 선언한 뒤 미국 달러와의 페그제(peg system·달러에 대한 자국 화폐의 교환 비율을 정해 고시한 뒤 이 비율에 따라 다른 통화의 환율을 정하는 변형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했던 아르헨티나도 처음에는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GDP가 60%나 성장했다. 그리스도 첫 6개월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리스의 상황은 전쟁을 제외하면 최악이다. 실업자들의 저축은 동났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지금 같은 상황이 길어질수록 문제만 더 커진다. 반면 유로존을 떠나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리스는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크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스페인도 유로존을 탈퇴해야 하나.
“그렇다. 스페인의 주택 가격은 앞으로도 20~30%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을 구제하는 데 1000억~1500억유로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스페인의 실업률은 25%다. 청년 실업률은 50%에 달한다. 긴축 프로그램으로 실업률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들의 문제는 더 커진다. GDP의 30%를 은행 구제에 썼던 아일랜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스페인은 경쟁력이 큰 국가다. 여행산업은 세계 최고다. 제조업도 발달했고 우수한 엔지니어도 보유하고 있다.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다.”
▷독일이 이들의 유로존 탈퇴를 묵인할까.
“독일에 유로존 내 불균형은 엄청난 문제다. 이미 구제금융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나마 그동안 불균형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인도 등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마저도 끝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경제가 위축되는 주변국들을 도와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리스와 스페인이 유로존을 떠나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주는 게 독일에도 유리하다.”
▷그렇다면 유로존의 궁극적인 모습은 뭔가.
“과거 금본위제와 같은 시스템을 20~30년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처럼 문제가 생긴 국가는 탈퇴해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들어오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한번 경험하고 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장기적으로 재정 통합을 향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프랭클린 앨런 교수는…금융위기 · 유럽경제 전문가, 장하성 등 한국인 제자 배출
프랭클린 앨런 교수(56). 1980년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금융 및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영국인으로 독일 요한볼프강괴테대, 벨기에 브뤼셀리브레대 등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금융위기와 자산 버블, 금융혁신 등이 주 연구 분야다. 일본 도쿄대, 인도비즈니스스쿨 등에서도 교환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여 아시아 경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등 한국인 제자도 배출했으며 한국 경제에도 관심이 많다.
필라델피아=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