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7시37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회전유리문 밖으로 멀찍이 한 신사가 보였다. 30여m를 걸어와 회전문을 지나더니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90도로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삼성 미래전략실장에 임명된 최지성 부회장(61)의 첫 출근길이었다. 평소 차로 오면 로비 바로 앞에서 내리던 것과 달리 멀찍이 떨어진 임직원 주차장 초입에서 내려 30m 정도를 걸어왔다.

그는 사무실로 향하는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할 때 일반 사원과 같이 사원증을 찍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그룹 2인자인 미래전략실장이 자주 드나들던 스피드게이트 옆의 유리문은 이날 열려 있지 않았다.

첫 출근부터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묻어났다는 게 주변이 평이었다. 미래전략실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왔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권위적이고 감춰진, 약간은 크렘린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전임 김순택 실장 때 소통과 변화를 추구했지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게 계열사들의 평가다.

최 부회장은 행동과 성과로 보여주는 현장형 최고경영자(CEO)다. 관리형인 김 실장 때와 또 다른 미래전략실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는 없더라도 실질적인 미래전략실의 힘은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계열사가 하는 일을 관리만 하기보다 일을 만들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내부의 전언이다.

거대한 변화를 맞은 미래전략실엔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최 부회장은 출근하자마자 미래전략실 내 팀장들과 회의를 갖고 발전과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평소와 달리 낮 12시를 넘어서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임직원이 많았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주문한 메시지가 지금 시장이 예측 불가능하니 성과에 취하기보다 긴장하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이라며 “독기와 승부근성을 가진 최 부회장이 이 회장의 주문을 이뤄내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