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새 흥행코드는 '파격女'
지난 6일 개봉한 조여정 주연의 사극 ‘후궁:제왕의 첩’(김대승 감독)이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흥행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첫날 35만명을 동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모은 것. 같은 등급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쌍화점’(20만5000명) ‘방자전’(16만6000명) ‘미인도’ (11만7000명)의 첫날 관객 수를 훌쩍 넘었다.

타이틀롤을 맡은 조여정의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연기가 화제를 모았다. 양반집 규수 ‘화연’은 남자친구와 달아나려다 붙들려 계비로서 격랑의 삶을 산다. 왕이 죽고 계비를 짝사랑했던 새 왕 역의 김동욱과 계비 조여정이 갖는 ‘무시무시한’ 정사 신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위를 넘나든다. 계비는 사극에 등장하는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끔찍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 조여정은 “화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파도를 피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용감한 여인”이라고 평했다.

누리꾼들의 관람 평은 엇갈린다. “궁궐에서 일어나는 권력과 사랑을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음란서생’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더럽고 추악하고 잔인하다” 등 상반된 의견이 맞섰다.

‘후궁’처럼 여배우가 타이틀롤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한국영화들이 새로운 흥행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임수정이 단독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300만명을 훌쩍 넘어 장기 상영 중이다. 고현정이 주연한 코미디 ‘미쓰GO’는 오는 21일 개봉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들이 흥행 상위권을 휩쓸면서 여배우들은 남자 주인공의 상대역조차 맡기 어려웠다. 그러나 스릴러와 액션 위주의 이들 남성영화가 똑같은 패턴과 한정적인 캐릭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씨는 “남성영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장르가 다양화되고 있는 신호탄”이라며 “여배우들이 자기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는 연기로 침체된 한국영화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 영화는 모두 남성들을 지배할 만큼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여주인공이 이끌어간다. 여성 관객들에게는 쾌감을, 남성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 역 임수정은 기존의 순수한 소녀 이미지를 벗었다. 남편(이선균)을 향해 시종일관 독설을 퍼붓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입는 등 파격적이고 대담한 연기를 펼친다. 나아가 두 남성의 운명까지 쥐락펴락한다. 남편을 쥐고 흔드는 한편, 카사노바(류승룡)에게 유혹당하면서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정인은 남편 직장 상사 부인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예의는 지켜도 눈치는 안 보겠다”고 선언한다. 관객들은 설문조사에서 이 대사가 가장 통쾌하고 기억에 남았다고 응답했다. 보다 도전적으로 진화한 여성 캐릭터가 관람 포인트인 셈이다. 한 관객은 트위터에 “부모님, 남자친구와 함께 봤는데 특이하게도 모두가 공감했다. 사소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정인’의 마음속 이야기가 눈물나게 공감됐다”고 적었다.

‘미쓰GO’는 극도로 소심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범죄의 여왕’에 오른다는 코미디다. 고현정이 소심한 ‘천수로’ 역을 맡아 엉뚱한 매력을 발산한다. 울고 웃고 촌스럽게 망가지는 천의 얼굴을 보여준다. 여성이 배신, 음모, 반전의 중심에 선다는 게 이채롭다.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도로시의 김창아 프로듀서는 “영화를 기획할 때 여성이 중심에 선 영화는 없었다”며 “여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게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고현정이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망가진다면 관객들에게 더 큰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