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정치를 설명해 주는 단 하나 절대지존의 변수는 바로 지지율이다. 대선 출마를 이미 선언했거나 곧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도 출마를 의심치 않는 박근혜 의원 등 이른바 인증된 대권주자들이 시시각각 촉각을 모으는 게 바로 지지율이다.

정치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미 정치 행보에 나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주요 일간신문들은 일일여론조사를 통해 대선 차기주자 선호도나 지지율을 알리고 있고, 급기야 요즈음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 한 TV 드라마가 60%를 넘는 지지율에 홀려 범죄사실 은폐, 살인교사 등 갖은 범죄와 음모를 불사하는 대권후보를 그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당대표나 원내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등 정당 지도부 선출과정에서도 항상 관건은 어떻게 해야 대선에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금과옥조처럼 대권주자의 지지율이 대세를 좌우했다. 대권주자의 선호도 조사 자체가 ‘지지율 정치’를 사실상 이끌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한국정치는 지지율의 노예가 됐다느니 지지율의 덫에 빠졌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

지지율이란 결국 표의 문제이고 또 정치인이 표를 의식해 움직이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기는 지난 총선 당시 물의를 일으켰던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막말파동, 이석기, 김재연, 그리고 임수경으로 이어진 종북 논란 시리즈에서 주요 정치인들이 보인 행태 역시 결국 가까이는 당대표 선거, 멀리는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주로 관중석에서, 때로는 거리에서, 먼발치에서 정치인들, 대권주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표의 노예로 전락하는 광경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우리를 주권자, 유권자라 부르면서도 나라의 앞길과 공동체의 일을 두고 설득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인기와 이미지에 영합해 표 획득에 혈안이 된 영혼 없는 정치인 군상들을 어떻게 양해하란 말인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다음 대통령의 임기 5년은 단순한 물리적 시간으로서 5년이 아니라 미래와 명운을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5년이 될지도 모른다.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맡기고 다시 또 그 결정적 5년을 살아가야 할 텐데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세력도 지지율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마법 같은 지지율의 위력을 이겨내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지지율은 그 위력만큼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치의 덫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지율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이 허물어질 수 있는지 벌써 여러차례 목격했다. 난공불락, 떼어놓은 당상으로 여겼던 이회창 후보의 패배가 그랬고 가깝게는 돌연 박근혜를 엎어친 안철수 현상과 이후의 재역전 과정이 또 그랬다. 하루아침이라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계기만 주어지면 뽕밭이 바다로 변하듯 지지율이 요동을 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야당이 노리고 여당이 우려하는 유일한 변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다. 이는 필경 12월 대선의 결정적 승부처가 될 것이다. 그동안 주요 언론의 선호도 조사에서 바닥을 기며 왜 이리 안 뜨냐며 한숨을 쉬던 야당 주자들이 너무 미리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도 크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지리멸렬로 끝날 개연성도 높기 때문이다. 반면 여당은 우여곡절을 딛고 선두에 복귀한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 행진이 수반할 ‘재미없는 정치’의 퇴락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 못지않게 안 원장까지 포함한 야권 후보 단일화의 잠재적 폭발성 때문에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지지율 때문에 부자 몸조심하듯 수성으로 일관했다면 바로 그 때문에 대세를 그르칠 수도 있다. 역설적 위험상황이다.

지지율 조사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필요하고 불가피한 일이다. 우리는 누가 얼마나 어떤 이유에서 지지를 받는지 알고 싶고 또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지율 덫에 빠져 정치와 정책이 실종되는 이상한 정치의 계절이 때이른 무더위처럼 우리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때그때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대의를 밝혀 멀리 보고 큰 걸음을 내딛는 대범한 정치인을 기다린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 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