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마이클 샌델 데려와 뭘 하자는 것인지
암표상의 부도덕을 준엄하게 꾸짖는 책이 바로 샌델의 최근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지난 주말 연세대에서 있었던 샌델의 신간도서 판촉행사에는 1만여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여기엔 샌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들은 공짜 입장권을 구해 2만원, 3만원에 되팔았다. 구름 같은 인기의 조력자인 암표상의 등장을 샌델은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정의(justice) 논변으로 유명한 소위 공동체주의 철학자가 샌델이다. 공동체주의는 번역하자면 전체주의의 낭만형 버전 정도 될 것이다. 잘해봤자 국가와 정부가 도덕의 독점 공급자가 되는 그런 사회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아주 반가워할….

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무려 100만부나 팔렸다. 미국서는 무명의 책이 한국에서 이토록 팔린 것은 기현상이다. 덕분에 출판사들이 대거 샌델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전작의 각색이라고 할 만한 《돈으로~》가 나오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의도가 무엇이든 독자들은 시장 아닌 공동체를 강조하는 샌델의 결론에만 주목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반(反)시장,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킨다.

샌델 열풍은 한국의 지식계가 부박(浮薄)하다는 증거다. 철학 교수 중에 경제를 아는 이가 드물고 경제학 교수 중에 철학적 논변을 전개할 수 있는 학자가 없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나 소설가 복거일 씨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찾기 어렵다. 재미는 있지만 편협하고,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지엽적이며, 시장경제를 비판하지만 도덕적 호소 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는 공허한 주장이 바로 샌델이다. 허리케인이 닥친 마을의 상점 주인이 창고의 물건을 꺼내 이재민을 돕기는커녕 폭리를 취하는 장면에 대한 악의적 묘사는 더욱 그렇다. 누구라도 이 부도덕한 폭리 상인과 소위 시장경제 체제에 적개심을 갖게 된다.

[정규재 칼럼] 마이클 샌델 데려와 뭘 하자는 것인지
그러나 현실의 진면목은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 실화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한양에 흉년이 들어 쌀값이 몇 배씩 폭등하면서 백성들의 아우성도 비등했다. 조정은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폭리를 취하는 미곡상은 참수하겠다는 방을 곳곳에 내붙였고. 이때 한 신하가 뛰어 들어왔다. “한양 쌀값이 폭등했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 전국의 상인들이 쌀을 지고 한양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목을 자른다면 모두 돌아가고 말 것”이라며 이 신하는 왕을 설득했고 기어이 한양 백성들을 살려냈다. 샌델의 몇 수 위인 이 조선선비의 이름은 ‘위대한 연암 박지원’이다.(나의 아버지 연암 박지원,過庭錄) 샌델은 눈앞의 폭리만 보았을 뿐 그것이 장차의 균형가격을 만들어 내면서 다양한 재화를 절묘하게 공급하는 동태적 흐름은 보지 못했다. 그는 상점 주인이 평소 열과 성을 다해 창고를 관리해왔다는 사실도 보지 못했다. 폭리는 그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며 다른 상인들이 물건을 싣고 달려오도록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장의 지시요 명령이다. 시장은 이렇게 정부보다 빠르게 물자부족을 해소한다. 더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다시는 그런 재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상인들을 꾸준히 자극한다. 일상에서 웬만하면 재화부족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샌델의 눈에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도덕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을 샌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샌델은 자신이 직접 해답을 주려는 것은 아니라고 겸손을 떤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답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처음부터 답이 없다. 자신이 비판하는 그 어떤 부도덕한 사례에 대해서도 실천적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는 대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의 주장처럼 도덕의 가치질서에 따라 재화가 분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도덕이라는 이름의 국가 폭력이 시장을 대체하는 세상은 이미 주자학적 도덕세계나 봉건적 계급사회에서 충분히 경험한 바다. 이런 공론(空論)에 한국 사회가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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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