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쪽의 파, 삶은 강낭콩 한 그릇, 빵 네 쪽, 삶은 채소 한 접시, 그리고 물 한 주전자. 밀짚모자를 쓴 농부의 소박한 상차림이다.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은 품위하고는 담을 쌓았다. 그는 나무 숟가락에 들린 강낭콩을 크게 벌린 입 속으로 허겁지겁 집어넣고 있다. 사람을 쏘아보는 눈초리하며, 빵을 왼손으로 거머쥔 모습하며 혹시라도 건드렸다간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분위기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임을 선언한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기운은 회화의 금기를 하나둘씩 걷어냈다. 서민의 삶도 캔버스 위에 둥지를 틀었다.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의 ‘콩 먹는 사람’에도 그런 변화가 반영돼 있다. 새 시대의 기운이 그림 속에 인간의 삶이라는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