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홀 그림 같은 '플롭샷' 버디…황제가 돌아왔다
역시 타이거 우즈(미국)는 ‘매직 샷 제조기’였다. 붉은 셔츠를 입고 그림 같은 ‘클러치샷’을 성공시킨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며 포효하는 우즈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었다. 2005년 마스터스 마지막날 16번홀에서 친 칩샷이 그린에서 90도로 꺾여 홀 앞에서 1~2초가량 멈췄다가 홀인됐던 장면을 다시 보는 착각을 갖게 했다.

우즈가 4일(한국시간)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GC(파72)에서 열린 미국 PGA투어 메모리얼토너먼트(총상금 620만달러) 마지막날 환상적인 ‘플롭샷’으로 대역전 우승드라마를 썼다. 그는 백나인에서 선두에 3타 뒤졌으나 막판 4개홀에서 3개의 버디를 잡아내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지난 3월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에 이어 10주 만에 시즌 2승째를 거뒀다. 통산 73승을 올려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최다승 타이를 이뤘다. 이 대회에서만 다섯 번째 우승컵이다. 우승상금은 111만6000달러.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16번홀(파3·201야드)에서 나왔다. 1타차 2위였던 우즈가 티샷한 볼은 그린 너머 우측 러프에 빠졌다. 홀까지의 거리는 15m. 건너편에 해저드가 있고 내리막 경사를 향해 어프로치샷을 해야 하는 위기 상황. 우즈는 샌드웨지를 빼들고는 헤드를 뉘다시피 하며 한 차례 연습 스윙을 했다. 플롭샷은 풀스윙을 해 볼을 바로 앞에 떨궈야 한다. 자칫 헤드 아랫부분의 날에 맞으면 볼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위험도가 높은 샷이다.

우즈의 웨지를 떠나 3m가량 솟구친 볼은 그린에지에 떨어진 뒤 스핀을 먹고 경사를 타고 구르더니 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순간 골프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우즈는 특유의 어퍼컷 동작과 괴성을 지르며 포효했다.

스티브 엘링 CBS스포츠 골프칼럼니스트는 “조금만 더 흥분했으면 아킬레스건을 다칠 뻔했다”고 묘사했다. 우즈는 인터뷰에서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웃었다.

우즈는 감기로 전날 39도 이상의 고열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전날 저녁 매니저 마크 스타인버그가 뉴욕 인근에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최종라운드에 돌입한 그는 2번홀 버디와 5~7번홀 3연속 버디 등 4개의 버디를 잡으며 승승장구했지만 8, 10번홀에서 거푸 보기를 하며 흔들렸다. 11번홀(파5)에서 파를 기록할 때만 해도 우승까지 이어지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15번홀(파5)에서 211야드를 남겨두고 3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한 뒤 ‘탭 인 버디’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어 16번홀 ‘플롭샷 버디’에 이어 18번홀에서 3m 버디를 성공시키며 왼손을 높이 치켜들어 우승을 자축했다.

그는 이날 절정의 샷 감각을 과시했다. 18개홀에서 14차례 ‘레귤러온’에 성공하며 그린 적중률 1위에 올랐다. 티샷은 9번홀에서만 딱 한 차례 페어웨이를 놓쳤다.

54홀 선두였던 스펜서 레빈(미국)은 합계 5언더파로 공동 4위로 밀려났다. 막판 선두는 로리 사바티니(남아공)였다. 12번홀(파3)에서 버디를 낚으며 선두에 나선 그는 16번홀(파3)에서 보기를 하며 우즈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다. 사바티니와 안드레스 로메로(31·아르헨티나)가 2타차 공동 2위를 했다.

한국(계) 선수 중에는 최경주(42)가 재미교포 존 허(22)와 함께 합계 2오버파로 공동 19위, 노승열(21)과 위창수(40)는 합계 7오버파로 공동 52위에 머물렀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