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1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붓과 물감, 도화지를 들고 서부 아프리카 베냉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마을 어린이들의 눈에는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예술이 인종의 벽을 허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을 찍고 선과 면을 그리는 방법만 알려주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보라”고 하자 아이들의 얼굴은 이내 웃음으로 가득찼다. 미국 뉴욕에서 미술을 전공한 한국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붓을 잡아본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그려내는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체계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선진국 어린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틀에 갇히지 않은 기발함이 녹아 있었다.

‘희망의 붓(Brush with Hope)’이라는 이름의 이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기획한 최영환 엠트리(M·Tree) 대표(32·사진). 그는 최근 뉴욕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림 판매 수익금은 베냉에 아트센터를 건립하는 데 쓸 예정이다. ‘겨자씨 나무’라는 뜻의 엠트리는 재능기부를 위해 모인 젊은이들 단체로 최 대표가 2009년 설립했다.

29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최 대표는 “이번 전시회는 가난 때문에 자신을 표현해볼 기회가 없었던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미술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두 번에 걸쳐 연 전시회에서 미국 신인 작가와 비슷한 수준인 점당 100달러 안팎에 작품을 내놓았는데도 30%가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침체된 미술시장을 감안하면 전문 화가 못지않은 판매량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주로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21명의 참가자 중에 15명이 회화, 디자인 등을 전공한 미술 전공자들이다. JP모건 직원, 플룻 전공자 등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최 대표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 신청을 해왔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했던 미술교육 전공의 김지민 씨(32)는 “루이스라는 12살 어린이가 그린 ‘내 인생’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파랑 초록 노랑 줄을 긋고 파랑은 미술을 하기 전의 마음, 초록은 미술을 하면서 변하고 있는 마음, 그리고 노랑은 미술을 통해 찾은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가 더 많은 것을 배워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7~8월 두 달 동안 케냐와 베냉을 방문하는 올해 행사에는 뉴욕뿐만 아니라 보스턴, 런던, 파리, 프랑크프루트, 밀라노, 팔레스타인, 서울 등 전 세계 9개 도시에서 70여명의 젊은이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현재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예술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적인 재능기부 프로그램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