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독일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베를린에서 지난 15일 열렸다. 정상회담 당일 만찬 메뉴 일부에 ‘아스파라거스’가 제공됐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선문답(禪問答)인 것이다. 기름기 없는 채식은 독일이 유럽연합(EU) 위기해법으로 견지해 온 ‘긴축기조’를 상징한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 독일이 주도한 ‘신(新)재정협약’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재협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재협상을 통해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의 성장요소를 반영하겠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유로위기 해법에 대한 두 정상의 생각은 판이하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공동과제인 ‘유로위기 해소’를 위해선 의견 차이를 좁혀야 한다. ‘샅바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는 프랑스가 선점한 상태다. 이유는 간명하다. ‘긴축정책’이 인기를 끌 수 있는 아젠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가시화된 2010년 5월 그리스 1차 구제금융 집행 이후 치러진 크고 작은 선거에서 ‘긴축’을 견지해 온 정권들은 모두 실각한 상태다. 독일은 대외적으로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등 긴축정책의 강력한 지지자를 잃었다.

유로위기의 본질은 ‘과도하게 누적된 국가채무’다. 즉 정부가 세수에 비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위기극복의 정도(正道)는 재정긴축을 통해 ‘재정규율’을 확립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 같은 시각에서 ‘긴축에서 성장으로의’ 정책기조 전환은 타당한 논거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장전략은 긴축반대 여론에 편승한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꼭지에 차있기 때문에 성장을 드라이브할 정책수단도 여의치 못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을 통한 국채매입, 유로 공동채권인 유로본드 발행,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한 은행자본확충”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결국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실물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동성이 부족해 유로존의 경기가 위축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동성 공급으로 유로위기의 본질인 과다부채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따라서 올랑드 대통령의 ‘긴축 대(對) 성장’ 구도 설정은 작위적이다.

재정긴축에 따른 구제금융 원칙은 ‘도덕적 해이’의 여지가 적다. 국가별로 ‘의무 준수’ 여부를 쉽게 관찰할 수 있고, 보상이 의무준수에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동성 공급을 통한 성장정책을 꾀하는 경우 개별 국가들은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일 수 있다. 미국 같이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 국가들은 경제력 차이를 지렛대로, “혜택은 자국으로 부담은 상대방으로” 전가시켜 무임 승차자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유로본드도 그 같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유로본드는 2010년 그리스 사태가 표면화돼 남유럽 재정위기국의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자,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처음 제안됐다. 예컨대 독일이 보증을 서는 경우, 유로 공동의 국채를 발행하면 위기국의 국채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 있다.

올랑드의 당선으로 유로본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유로본드와 국채는 다르다. 국채가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발행국가가 ‘조세권’을 발동해 그 상환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본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유로조세(Euro tax)’를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유로조세는 ‘화폐통합’을 넘어 ‘재정통합’을 이룰 때 가능하기 때문에, 유로본드는 시기상조다.

유로의 원죄라면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이질적인 국가들을 통합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로위기가 그동안 진정되지 않고 악화된 것은 ‘규칙 없는 지원’으로 무임승차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유로존이 강건해지려면 재정준칙을 재정립하고 구조조정의 시장규율을 존중해야 한다. 올랑드의 성장전략은 오히려 유로 위기를 만성화하고 증폭시킬 뿐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