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발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이 검토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오늘 특별정상회의를 갖고 역내 모든 은행예금에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방안, 유로본드 발행,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한 은행자본 확충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책들도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되 자국에서만 통용되는 임시화폐 ‘G유로’를 발행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물론 사정이 다급하고 그리스의 국가부도와 유로존 탈퇴가 가져올 수 있는 파장을 막자는 유럽 정치가들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당장 쓰레기통의 뚜껑을 덮는 것이 될지 몰라도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열거되는 방안들이 하나같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오히려 조장하고 해결을 미루는 미봉책들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유로존 위기는 엄연하게 경제력에 차이가 있는 국가들을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하나로 묶었던 데서 기인한다. 한마디로 위기의 본질은 정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덮어둔 채 또다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무책임한 대증요법식 대책만을 쏟아내고 있는 게 지금 유럽이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가 “유럽 위기는 규칙이 없어 발생했다”며 “규칙 없는 지원은 무임승차만 불러올 뿐”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유럽이 그리스 등을 구제하지 않아야 재정상황을 재정립하고 시장 규율을 세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말해 주목을 끌었다.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한경미디어 그룹이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2012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의 발언이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퇴출되면 글로벌 경제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곪은 상처는 터뜨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국채도 무제한, 은행예금도 무제한 보장하는 식의 대책은 유럽을 무원칙의 사회로 만든 끝에 더 큰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