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확산 막아라"…EU, 모든 은행에 예금 지급보증 추진
유럽연합(EU)과 미국·영국 정부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그리스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른 재정위기국에서도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EU는 역내 모든 은행의 예금 지급을 보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영국은 은행 시스템 붕괴에 대비해 처음으로 공동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뱅크런 확산’ 최악의 시나리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정책결정자들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분석가들도 유럽은행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은행 고객들이 예금을 대거 빼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 수백개 은행에 1조유로 이상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여전히 뱅크런에는 취약한 상태라는 지적이다.

채권펀드업체 핌코의 필리프 보더루 유럽담당 리서치센터장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리스 사태가 자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앞다퉈 예금을 해외로 옮기려고 하면 또 다른 형태의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 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예치한 예금 중 상당 부분이 즉시 인출 가능한 예금이라는 점 때문에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따르면 전체 은행 예금의 약 30%가 즉시 인출 가능한 초단기예금이다. 이탈리아는 48%, 포르투갈은 21%가 즉시 인출 가능한 예금으로 분류돼 있다.

스테판 네디알코프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그리스가 유로를 포기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은행에서 최소 900억유로, 최대 3400억유로의 예금이 즉각 인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존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되자 기업들은 유로에서 발을 빼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조니워커’ 등을 생산 판매하는 영국 주류업체 디아지오와 광고대행사 WPP그룹 등 글로벌 기업들이 유로화 예금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유로 가치가 떨어지면 보유하고 있는 자산 평가액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달러 등 다른 통화로 갈아타고 있다.

○美·英 7대 은행 구제 프로젝트

WSJ는 뱅크런 가능성에 대비해 EU가 은행들의 예금 지급을 보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EU는 대규모 뱅크런을 견제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예금지급보증은 은행에 무슨 일이 생기면 EU가 은행을 대신해 고객들에게 예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은행에 넣어둔 예금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대책이다. WSJ는 그러나 이 같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진전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영국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중앙은행(BOE)과 금융청(FSA),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공동으로 양국 7대 은행에 대한 구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당국이 개입해 주주와 채권단이 손실을 감수하도록 하는 대신 핵심 비즈니스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 은행에 대해 감자와 채권 출자전환 등을 실시한 뒤 자금을 투입해 은행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얘기다.

금융시스템에서 중요한 은행으로 분류된 7대 은행에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 바클레이즈 등이 포함됐다고 FT는 전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