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유로존 재정위기 해법을 놓고 벌인 지지세 확보 대결에서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올랑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 긴축 정책을 해법으로 고집해왔다. 반면 최근 집권한 올랑드는 재정자금을 풀어 경제를 우선 성장시켜야 한다며 반기를 들었다. 주요 8개국(G8) 정상들이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를 반대한 것도 유럽 위기 해법으로 성장 정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G8 회의에서 포위당한 메르켈

G8 정상들은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대통령 별장(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가진 뒤 내놓은 성명을 통해 “위기 해법이 모든 국가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우리의 시급한 임무는 성장과 일자리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상회의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메르켈 총리, 올랑드 대통령,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참석했다.

이 같은 공동 입장은 메르켈 총리의 긴축 일변도 정책 주장을 김빠지게 했다. 메르켈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독일과 프랑스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로존의 재정 긴축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예산 균형을 통한 재정 건전성과 성장을 위한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이 한 발짝 물러서도록 강하게 압박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바마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수습책으로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고 설득했다. 오는 11월6일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로선 유로존 위기로 미국의 경기 회복이 타격을 받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기업이 투자를 줄인다면 미국 피츠버그와 밀워키에 있는 근로자들의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유했다.

◆불안감 높아진 스페인, 그리스

스페인과 그리스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지난 18일 스페인 은행의 전체 대출 중 8.37%가 부실 대출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 자산 규모도 1년 새 33%나 급증한 1480억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페인 경제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외국인은 스페인 증시에서 310억유로의 자금을 빼냈고 주가는 2003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스페인 국채 금리는 18일 자금조달 위험 수준인 연 6.28%까지 상승했다.

다음달 17일 치러지는 그리스 총선거를 둘러싼 공방도 치열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로존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라”고 그리스에 요구했다는 소문은 양국 간 비방전으로 비화됐다. 독일 총리실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그리스 정치권과 언론들은 내정간섭이라고 메르켈을 맹비난했다.

G8 정상회의가 유로존의 긴축보다 성장에 힘을 실어줬으나 구체적인 유로존 위기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부실한 스페인 은행들에 유로기금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쳤다. 다음달 초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릴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주목된다. 이어 17일 치러지는 그리스 2차 총선거 결과는 유로존 재정위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