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무야!"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미 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첫날 경기에서 5언더파 공동 4위로 우승경쟁에 합류한 재미교포 나상욱(29·케빈 나)이 다시 한번 나무와의 악연에 시달렸다.

1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파72·7천215야드) 1번 홀(파4).
나상욱이 러프에서 친 2번째 샷이 그린 오른쪽을 향해 날아가다가 12m 높이의 야자나무 가지 사이에 그대로 박히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야자수 쪽으로 다가선 나상욱은 온 힘을 다해 나무를 흔들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고 나상욱은 '로스트 볼'로 2벌타를 받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샷을 했다.

10번홀에서 티오프한 나상욱은 전반에 파죽의 언더파 행진을 계속하다가 후반 첫 홀에서 나무에 박힌 샷으로 결국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지난해 4월 발레로 텍사스오픈 9번 홀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순간이었다.

나상욱은 당시 나무가 울창한 러프 지역으로 들어간 볼을 제대로 건져내지 못하고 파 4인 그 홀(474야드)에서 12오버파(듀오디큐플 보기)를 적어내는 수모를 겪었다.

나상욱은 1년 전의 악연을 잘라내겠다는 의미로 지난달 열린 올해 텍사스오픈에서 트러블샷을 남발하게 한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럼에도 나상욱은 텍사스오픈 1라운드에서 트리플 보기 1개를 포함, 7오버파를 친 뒤 기권을 선언하고 짐을 쌌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무 징크스'에 무너지지 않았다.

야자수에 공이 박힌 1번홀에 이어진 2, 3번홀에서 내리 버디를 잡아 나무 때문에 까먹었던 타수를 곧바로 만회한 것이다.

1라운드를 5언더파, 공동 4위의 준수한 성적으로 마친 나상욱은 기자들에게 "나무가 매우 커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흔들자고 부탁했는 데 다들 말이 없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나상욱은 "이런 일은 흔치 않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날 나상욱이 야자수에 공을 박는 샷 장면은 온종일 미국 방송을 타는 등 홍보효과로는 만점이었다.

(폰테 베드라 비치<美플로리다주>연합뉴스) 김재현 특파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