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밥' 안쓰러운 아버지…달게 먹는 아들
김선경 경인정밀기계 사장(63)은 요즘 아들 김태훈 경영기획실장(31)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출근하자마자 오전 내내 고객사 관계자들과 릴레이 면담을 하고, 오후엔 시공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26년째 초정밀 기어와 기어감속기를 생산해 온 경인정밀기계는 김 실장 때문에 요새 활력이 넘친다.

김 실장은 “아침 일찍 해외 바이어에게서 온 이메일을 열어보는 일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한 달에 두세 번꼴로 미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 출장 일정까지 잡혀 있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을 바라보는 아버지 김 사장은 안타까운 마음 반, 기특한 마음 반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꺼리는 굴뚝산업(철강 제조업)에 외아들이 군말 없이 뛰어든 점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김 실장은 2008년 인하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경인정밀기계에 입사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중국 창춘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고 미국에서도 어학연수과정을 밟아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그는 “아버지가 20년 넘게 키워온 회사를 다른 사람 손에 쉽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며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제 회사라는 느낌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입사 후 김 실장이 처음 맡은 일은 지난해 4월 마무리된 사옥 증축이전 프로젝트. 3000㎡에 불과했던 부천시 내동 옛 공장에서 안산시 초지동 현 공장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김 실장이 2009년부터 2년 동안 주도했다. 1만6000㎡ 규모의 부지 선정부터 9300㎡ 규모의 공장 증축 및 시설 운반, 작업장 설치까지 김 실장이 전부 다 기획했다.

김 사장은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아들로서 듬직하고 부하 직원으로서도 만족스럽다”며 “앞으로도 무리 없이 회사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사장이 정밀기어 분야로 뛰어든 것은 1968년, 친형과 동업해 ‘경인기어’를 세운 게 시초다. 그는 초정밀 기어 연구·개발에 몰두하다가 독자 회사를 만들어 나만의 꿈을 키워보겠다고 결심, 1986년 경인정밀기계를 설립했다.

창업 초반에 엘리베이터용 웜기어 개발을 시작으로 선박엔진용 구동기어 등을 잇달아 개발했다. 특히 일본에 의존했던 산업용 감속기와 기어를 국산화하면서 기어 가공 전문업체로서 회사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회사는 지난해 매출 11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0%.

김 사장은 2002년 신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며 선로변환기 연구에 뛰어들었다. 한국철도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KTX 선로변환기 ‘MJ81’은 프랑스 알스톰사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3년 만에 국산화했다. 이 장비는 2010년 9월~2011년 8월 익산~여수 구간에 설치됐다. 고속철도 선로변환기 제조부터 시험장비까지 갖춘 회사는 국내에서 경인정밀기계가 유일하다.

김 사장은 “올해부터 선로변환기를 지렛대 삼아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며 “이쪽 시장이 세계적으로도 성장하는 추세여서 올해는 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인정밀기계 임직원에겐 정년이 따로 없다. 기술만 있고 일할 능력만 있다면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게 김 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직원 63명 중 20%가 60세 이상이다. 70세 기술자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게 가장 큰 행복임을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한다”며 “아들과 함께 직원 모두가 오래 같이 할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안산=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