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으로 유족으로부터 고발당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57·사진)이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8시간에 가까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이날 밤 9시40분께 검찰청사를 나서면서 조 전 청장은 “후회한다. 그런 얘기를 함으로써 노 전 대통령 유족에게 많은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 전 청장은 2009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의혹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기록 일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진술이 구체적일 경우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지고 정치권 등에 적지 않은 파장도 예상된다.

○檢 “조 전 청장 한 곳 지목해 얘기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백방조)는 이날 조 전 청장을 상대로 ‘누구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고, 계좌 개설 은행은 어디이며, 누구 명의로 돼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와 관련해 조 전 청장이 한 곳(은행)을 지목했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 발언의 진위 여부에 따라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이 있을 전망이다. 그는 그간 언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어느 은행의 누구 계좌인지, 알고 있는 걸 모두 진술하겠다”고 말해왔다. 2009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도 최근 인터뷰에서 “조 전 청장의 발언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며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이 전 중수부장의 이 같은 언급까지 겹치면서 검찰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봉인됐던 이전 정권의 비자금 수사기록이 다시 열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반면 조 전 청장의 말만 듣고 당시 수사기록을 열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봉인을 푸는 순간 비자금 수사 식으로 파장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사실관계 확인은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박연차 게이트’ 뇌관

차명계좌의 실체와 관련, 그간 관련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차명으로 관리하던 계좌에서 출발한다. 정 전 비서관은 2005년부터 3년간 12억5000만원을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떼어내 차명계좌로 보관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 퇴임 후 주려했다”고 말해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당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정 전 비서관 계좌가 노 전 대통령 쪽으로 흘러들어갔으니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37)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 140만달러가 흘러들어간 것을 차명계좌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조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 때인 2010년 3월 기동부대 지휘요원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나. 뛰어내리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고발당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