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안정을 위해 정유사에 이어 일선 주유소를 상대로 일제 가격 점검에 나선다. 최근 국제 유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도 주유소 판매가격은 오히려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9일 “그동안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을 낮출 수 있는 대책을 많이 내놨지만 주유소의 판매가격은 요지부동”이라며 “주유소 가격이 왜 국제 유가 흐름에 역행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유류제품 가격 동향과 유통구조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비자시민모임의 석유시장감시단, 학계 전문가 등과 함께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재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기름값 인하대책의 주무 부처 역할을 해왔던 지경부와의 묘한 신경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주유소 가격, 국제 유가에 역행

정부 '기름값 잡기' 제2탄…이번엔 주유소다
이날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8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0.27달러 하락한 108.97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2일 116.59달러를 찍은 후 6일 연속 하락세다. 주간 평균가격으로 살펴봐도 하락세는 뚜렷하다. 3월 둘째주 평균 123.59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떨어져 5월 첫째주엔 115.36달러를 나타냈다.

하지만 주유소 판매가격은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3월 첫째주 2017.55원을 기록한 전국 주유소의 무연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5월 첫째주 2058.21원까지 치솟았다. 재정부가 주유소를 중심으로 석유류 제품 유통구조를 조사해야겠다고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90% 이상 차지하고 있는 석유시장에 삼성토탈을 새로 참여시키고 주유소가 각기 다른 브랜드의 석유를 함께 판매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정유사를 통한 기름값 안정 카드는 모두 꺼내 쓴 만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운송비 절감분은 어디로?

실제 주유소의 석유 판매가격은 전문가들도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정유사별 대규모 저장시설이 있는 지역의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운송비용 절감분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GS칼텍스의 100만배럴 규모 저장시설이 있는 인천 중구 지역 GS칼텍스 주유소들의 9일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평균 2084원으로 전국 평균인 2053.52원을 훨씬 웃돌았다.

또 현대오일뱅크의 저장시설이 있는 부산 남구 지역의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들은 인천 중구보다도 더 비싼 ℓ당 2070원에 가격을 책정해놓았다. SK의 20만배럴과 9만배럴짜리 정유시설이 있는 울산 남구지역의 SK주유소들도 ℓ당 2057원에 보통휘발유를 팔았다.

○유가보다 동네 주유소에 더 민감?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상에 대해 주유소들이 국제 유가와 정유사의 공급가격보다 인근 경쟁 관계에 있는 주유소들의 가격 동향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역별 대형 주유소의 가격을 기준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판매 가격을 유지하는 식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 실제 주유소들은 법적으로 소비자가 볼 수 있는 거리에 제품별 판매 가격을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가격 담합’을 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담합’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설명도 정확한 수치와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TF를 통해 석유 유통구조를 제대로 파헤쳐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