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6문장이었다. 북한이 ‘통영의 딸’ 신숙자 씨의 신상에 대해 유엔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에 보낸 답변서는 간결하면서도 형식적이었다. “신숙자 씨는 간염으로 사망했다, 두 딸은 (아버지) 오길남 씨를 상대하는 것을 강력히 거부했다, 이들은 임의적 구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의 생사에 마음을 졸이고 관심을 기울였던 국제사회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성의 없는 대답이다.

신씨의 삶은 한반도의 질곡 많은 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1960년대 신씨는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향했던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남북 간 사상대결이 치열하던 그때, 북한 공작원의 꼬임에 포섭돼 독일 유학생이던 남편 오씨와 1985년 북한 땅으로 향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마주한 현실은 공작원의 달콤한 말과는 달랐다.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남편 오씨에게 “당신이라도 탈출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신씨와 두 딸은 오씨가 남한으로 떠난 뒤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억류돼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지난해 신씨의 고향 통영을 중심으로 구명운동이 일어났고 신씨에게는 ‘통영의 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북한은 그간 납북자의 생사여부를 묻는 우리 정부와 민간에 대해 “납치자는 없다”는 주장만 반복해왔다. 이번 답변서는 신씨에 관한 그간의 ‘묵묵부답’ 행태에서 다소나마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신씨의 사망을 증명할 구체적 설명도 없고 두 딸 혜원·규원씨의 신상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정부 당국자는 “어떤 나라도 자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국제사회로부터 확인요청이 왔을 때 답신이 이 정도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한의 답변은 국제사회 기준으로 봐서 전혀 합당하지 않은 행태인 셈이다.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돼 억류된 우리 국민은 약 500명으로 추정된다. 신씨 모녀 사태의 해결은 이들 납북자를 송환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북한은 신씨의 사망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음과 동시에 두 딸의 신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신씨 모녀 문제의 처리는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을 평가하는 국제사회의 또 다른 가늠자가 될 것이다.

조수영 정치부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