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계절의 여왕. 하늘은 높푸르고 신록은 나날이 짙어간다. 학교가 남산 중턱에 자리하고 보니 이런 계절엔 자연의 싱그러움과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점심을 먹고 짬을 내어 학생들과 함께 남산 산책길을 걸어 보면 연초록 빛깔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달포 전만 해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피더니 어느새 새로운 생명의 이파리들이 귀 가까이 와서 속삭인다. 오가는 시민도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다. 하늘과 바람과 신록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북한산이 서울 외곽을 감싸주는 병풍 같은 산이라면 남산은 서울의 심장 같은 산이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은 대장군처럼 늠름하게 버티고 있고 그 사이를 어머니 같은 한강이 흐른다. 세계 어느 수도를 봐도 이처럼 좋은 산과 강물이 조화롭게 터전을 이룬 곳은 찾기 어렵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 수도권을 포괄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꽃의 씨방과 같은 곳이다. 그 씨방 속의 한복판이 바로 남산이다. 서울의 상징인 ‘N서울타워’에 올라 보면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경관의 중심에 남산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N서울타워의 N은 ‘New, NAMSAN’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 자체가 서울을 대표하는 기호로서 ‘서울의 새로움’과 ‘서울의 중심으로서의 남산’을 의미한다. 조명등을 화려하게 밝힌 N서울타워의 이미지는 이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표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서울의 중심, 서울의 상징 이미지만으로 남산의 브랜드 가치를 제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남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유기체적인 생명체로 느끼고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 몸의 연장이자 확장이다.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여름엔 숲그늘, 가을엔 낙엽이 우리의 정서를 순화해준다. 벚꽃잎이 흰 눈처럼 펄펄 져 내리는 지난 봄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음률을 남산 산책길에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휴대폰으로 다운로드받아 들으며 걸어가는 청춘들 덕분에 귀의 감미로움과 눈의 황홀함을 함께 사랑하는 경험도 해봤다.

남산은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공기를 정화해주는 서울의 허파이며 어떤 시민도 차별하지 않고 품어 안는 너그러운 어머니다. 얼마 전 학교 기숙사를 준공하고 ‘남산학사’라고 이름붙였는데, 우리 학생들이 남산의 자연환경을 어머니의 품처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속감이나 일체감은 공동체의 단합을 위해서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 모두가 우리와 한몸이라는 느낌과 자각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산은 단순히 서울의 중심, 서울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과 한몸이 되는 생명의 공간인 셈이다.

김희옥 < 동국대 총장 khobud@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