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저축은행 네 곳의 퇴출 결정으로 저축은행업계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인식에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할지 의문이다.

저축은행은 애초 서민금융회사로 출발했다. 사채시장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1972년 관련 법을 만들어 지역금융사로 출범시켰다. 그 때만해도 중소상공인과 서민의 금융활동에 도움을 주려는 취지가 강했다. 시장 골목을 누비면서 단골 고객들의 돈을 유치하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영업만 했다면 무더기 퇴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2000년대 들어 저축은행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대형 저축은행이 잇따라 나왔다. 최근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쓰러진 곳 대부분이 이들 대형사다. 이제는 10위권 내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저축은행은 HK저축은행 한 곳뿐이다.

부실사 떠넘기기로 대형화 초래

M&A를 통한 저축은행의 대형화는 원칙 없는 금융정책의 산물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저축은행을 서민금융으로 육성하겠다는 철학 없이 부실 저축은행을 다른 저축은행에 떠넘기기 일쑤였다.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2005년, 2006년 감독당국 압박에 못 이겨 한마음저축은행(현 부산솔로몬)과 전북나라저축은행(현 호남솔로몬)을 인수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항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퇴출 발표를 앞두고 “감독당국의 정책을 좇아 사업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죽이려 한다”며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정황으로 보면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감독당국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곳에는 서울에 지점을 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주주의 자질 검증과정도 따로 없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 이상과 고정이하 여신비율 8% 이하인 곳을 우량업체로 포장해주는 ‘8·8 클럽’이란 제도를 만들어 여수신을 무차별적으로 늘리도록 도왔다. 지난 10년 동안 서민금융사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온 정책은 거의 없었다. 서민금융의 기치를 내건 현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진의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몸집이 커진 저축은행이 돈을 굴릴 데라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뿐이었다. PF조차 어쩌면 정부가 집요하게 활성화를 주도한 부동산 정책이었다. 저축은행들은 제대로 된 사업성 평가 없이 ‘건설사의 시공보증’이라는 담보만 믿고 대출에 주력하는 우(愚)를 범했다. 2007년까지만 해도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위축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서민금융 육성의지 과연 있나

하지만 감독당국도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크든 작든 금융시장에는 항상 불확실성과 위기가 내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업종의 특성을 감안한 감독 기법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잘 관리하면 문제가 없지만, 잠깐 한눈 팔면 부지불식간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저축은행과 달리 대부업체는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사실상 감독을 받지 않고 있는 대부업체는 소액 대출만으로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1조5000억원 규모를 대출하는 한 대부업체는 지난해 1500억원의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그런데 60조원의 대출잔액이 있는 저축은행업계는 총 3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정책실패 탓에 저축은행들이 설 땅을 잃은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지역밀착 영업을 통해 개인 자영업자에게 연금리 20% 안팎의 대출을 늘려야 저축은행이 살 수 있다”(권혁세 금융감독원장)는 단순한 답을 찾는 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이익원 금융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