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는 몸집이 작고 야무지다고 해서 ‘양글이’로 불렸다. 어느 날 아들이 중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되돌아 오자 부랴부랴 닭을 팔아 돈을 마련해 줬다. 그리고 차비가 없어 장에서 집까지 뙤약볕 내리쬐는 시오리 길을 걸어서 돌아가야 했다. 점심도 굶은 채였다.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나는 돈을 꼭 쥐었다.”(김용택 ‘김용택의 어머니’)

부모는 아낌없는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지만 자식들은 그걸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체로 나이 지긋해져서야 그 마음의 한 자락을 짐작할 뿐이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절벽을 휘감아돌 때가/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종아리를 씻고 돌아와/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누구나 한때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되는 순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부모 자식 간 인연이 늘 매끈하게 맺어지고 끊기는 게 아니라는 건 비극이다. 노인 학대 신고가 매년 늘어 지난해 5076건(보건복지부)에 이른 것만 봐도 그렇다. 언어폭력이나 무시 등 정서적 학대(1981건), 신체적 학대(1304건), 방임(891건)이 주를 이뤘다. 학대자는 아들(48.4%)이 가장 많았고 딸(12.7%), 배우자(10.0%), 며느리(8.4%)가 뒤를 이었다.

그래도 숨 쉴 힘만 남아 있으면 자식 걱정하는 게 부모다. 때론 거짓말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식품회사가 어버이날을 맞아 ‘노부모가 자식들에게 주로 하는 거짓말’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아픈 데 없다.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아라’는 대답이 33%로 제일 많았다고 한다. ‘선물 필요 없다. 너희 살림에 보태라’(30%) ‘바쁜데 내려오지 마라’(25%) 등도 자주 하는 거짓말로 꼽혔다.

아무리 건강해도 나이들면 아픈 데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자식 보고픈 마음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노인 건강은 하루가 다르다고 했다. “난 괜찮다”는 노부모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나중에 사무치게 후회하게 된다. ‘기억 왔다 갔다 할 때마다/아들 오빠 아저씨 되어/말벗 해 드리다가 콧등 뜨거워지는 오후. …떼쓰던 어머니, 누우신 뒤 처음으로 편안히 주무시네./정신 맑던 시절/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고두현 ‘참 예쁜 발’)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