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트머스대 총장 선임위원회에 불려갔을 때 저한테 왜 관심이 있는지, 왜 인터뷰를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이 일을 주신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죠. 그들이 저에 대해 좋게 생각한 것은 제 인생이 ‘뭔가 되려고’ 살아온 게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학장이 된다거나 부총장이나 총장이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무엇인가 하기 위해 살았습니다.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약값을 낮추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는데, 그들은 그런 점을 높이 평가했어요. 저에게 성공이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제 지위를 지키려고 골몰할 때 스스로 이 일에서 물러날 겁니다. 제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또 한 가지 일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건 훨씬 어렵습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사진)는 2009년 미국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대 총장에 아시아계 최초로 선임됐던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해 성공신화를 쓴 그는 의사이면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학자였고, 전 세계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해온 인물이다. 최근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은행 총재가 된 그는 전환기를 맞이한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인재상으로 꼽힌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는 김 총재의 성공 스토리와 교육철학, 바람직한 리더상을 소개한 책이다. 김 총재와의 직접 인터뷰와 다트머스대 총장 취임 연설문, 언론 기고문 등을 토대로 그의 육성을 전달한다. 저자 백지연 씨는 한국이 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때인 2009년 인터뷰했고, 그가 세계은행 총재에 취임한 뒤에도 한국 언론인으로는 유일하게 직접 만났다.

김 총재는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스펙 쌓기’에 골몰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2005년 다트머스 대 졸업생 중 40%가 6년이 지난 뒤에는 졸업 당시 없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무섭게 변화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벌레를 원치 않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을 원한다. 세상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며 세계 무대를 발로 뛰는 글로벌 시민이 되라고 그는 권했다.

또 전문지식에 갖힌 ‘바보’가 아니라 통섭의 능력을 겸비한 인간이 될 것을 주문한다. 전공 분야 외에도 예술을 함께 공부하라는 것이다. 가령 공학과 문학을 함께 공부하면 훨씬 창의적이고 혁신적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냉소주의로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그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는 ‘끈질김’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성공은 뛰어난 능력보다는 인내심에서 온다는 지론이다. 대체능력도 갖출 것을 주문했다. 한 영역에서 배운 것을 다른 것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돋보이는 이유는 몸소 실천한다는 점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값싼 복제약을 만들게 해 2007년까지 300만명을 결핵과 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부터 구했다. 복제약은 오리지널 제품보다 95%나 쌌지만 선진국의 반대로 사용하지 못하던 것을 행정적인 수완으로 풀어내는 뚝심을 보여줬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