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 수십년간 일하면서 득도의 경지에 이른 분들의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그들의 스토리를 영상에 담는 ‘생활의 달인’은 필자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다. 편지봉투 붙이는 단순 반복 작업을 기계보다 빨리 하는 달인, 타이어를 굴려서 안 보이는 곳에 정확하게 집어넣는 달인, 수백개 고구마 맛탕을 프라이팬 채로 멋있게 공중 부양시켜 식힘으로써 바삭하고도 맛있는 식감을 창조하는 달인 등 다양한 분야의 달인들에 매번 놀랄 뿐이다. 달인들에게 비법을 물어보면 같은 일을 수십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는 겸손한 답이 대부분이지만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시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톡스, 필러 주사를 시작한 지 햇수로 십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이런 ‘달인’의 경지에는 턱도 없다. 다만 남한테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주사할 때 예전보다는 멍이 훨씬 덜 든다는 점이다.

얼굴에 주사를 수십 군데 하다보면 한두 군데 멍이 들 수도 있으련만 너그럽지(?) 못한 우리나라 고객들은 멍이 한 군데만 들어도 말이 많다. 보톡스 주사 1주일 후 상태를 체크할 때, 멍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는데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제부터 없어졌다고 한다. 5~6일 만에 없어질 멍이면 대단한 멍도 아니련만 그것도 용서하기 어려운 모양인가보다. 하지만 내가 맞아봐도 조금이라도 멍이 들면 신경 쓰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멍이 안 들게 할까 고민한 결과 보톡스는 ‘황제보톡스’를, 필러는 멍이 안 드는 특수한 바늘 ‘캐뉼라’를 사용하게 됐다. ‘황제보톡스’는 특별한 게 아니고 보톡스 주사할 때 세 명이 달라붙어 주사바늘 자국을 5분간 지혈해준다고 필자가 붙여본 별칭이다. 캐뉼라는 지방이식 때 사용하는 끝이 뭉툭하게 막혀 있고 대신 옆으로 구멍이 나 있는 바늘인데, 뭉툭하기 때문에 피부 속 깊숙이 안보이는 곳의 혈관도 다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필러에 맞게 캐뉼라를 작은 걸로 주문 제작해 사용한 이후로 필러 주사시에도 멍이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멍 발생률을 현저히 떨어뜨린 후, 더 큰 문제는 우리 고객들이 멍이 안드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음날 촬영을 앞둔 연예인이 필러를 맞으러 와서 ‘지금까지 원장님이 해서 한 번도 멍이 안 들었으니 오늘 맞고 가겠다’고 얘기하니 부담백배다.

현생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e)’라고 하는데 사피엔스가 라틴어로 ‘생각한다’는 말로 ‘슬기로운 인간’이란 뜻이다. 사람의 생각하는 능력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다는 얘기다. 자신이 하는 일에 항상 왜 그럴까, 더 쉽게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달인이 되는 날을 꿈꾸며.

서구일 < 모델로피부과 대표원장 doctorseo@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