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마음은 언제나 다리와 함께 작동된다.” 《인간불평등기원론》과 《에밀》도 산책 중 구상했다고 썼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무작정 앞으로 걷는다고 한다. 걸어간 길이를 통해 분노의 강도를 짐작한다는 것이다.

걷기는 이렇게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다스린다. 그뿐이랴. 꾸준한 걷기는 신체 저항력을 키우고 몸 속의 독소를 제거, 노화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게 통설이다. 하루 1시간씩 70일만 계속 걸으면 당뇨병과 갑상선 질병도 고칠 수 있다는 마당이다.

심신 모두에 좋다는 걸 알아도 실천하긴 쉽지 않다. 도시에선 더하다. 핑계는 수두룩하다. 춥다, 덥다, 바쁘다, 피곤하다, 미세 먼지와 매연이 더 나쁘다 등. 걷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또 있다. 울퉁불퉁하거나 여기저기 파헤쳐진 보도가 그것이다.

‘도시에서의 보행은 기술’이란 말이 있거니와 서울에선 실로 그렇다. 이면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로변도 1㎞를 제대로 걷기 어렵다. 툭하면 구두굽이 끼는 보도블록, 보도와 차도 사이 높은 턱, 공사장비를 마구 늘어놓거나 공사 끝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길, 함부로 주차한 자동차까지.

비라도 오면 언제 흙탕물을 뒤집어쓸지 모른다. 반듯하게 놓이지 않은 블록이 움직이면서 밑에 고인 물이 튀는 까닭이다. 혼자 걷기 힘든 만큼 유모차라도 밀려면 울화가 절로 치민다. 휠체어 이용자의 경우 통행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셈이다.

연말이면 불편은 극에 달한다. 어디랄 것 없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한답시고 둘러 엎어 놓는 까닭이다. 서울시가 ‘보도블록 10계명’을 제정, 보도블록 공사 실명제와 11월 이후 공사 금지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60년 관행에 마침표를 찍겠다니 천만 다행이다. 재정도 절약될 테고 돌아다닐 일도 줄어들 것이다.

차제에 보도와 차도 연결 부분의 경사가 완만한지도 꼼꼼히 살피고, 보도 일부에 만들어 놓은 조경 구간도 정비했으면 싶다. 넓지도 않은 보도 중간에 나무를 심어놓은 건 시민들의 편안한 걷기를 방해할 뿐이다. 게다가 조성만 하고 관리를 안해 가지는 제멋대로 뻗고 더러는 말라죽고 바닥에 담뱃재는 쌓여 흉하기 이를 데 없다.

온갖 명목으로 파헤치곤 대강 때워 비만 오면 움푹 패이는 차도도 손볼 일이다. 아파트 옆 쌈지공원에 피아노월을 설치했다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항의하자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치하는 식의 주먹구구식 행정도 그만 좀 하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