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 방향도 그렇고,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19대 국회에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국회의원이 대거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란 경제활동에 민주주의 원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다. 민주주의란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고 그 의사결정이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이런 ‘민주적’이라는 말을 경제적 의사결정에 사용할 수 있는가.

경제활동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경제 민주화’는 바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제적 평등은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경제 민주화란 기치 아래 중소기업, 농민, 서민 등을 보호해 결과적 평등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주장이 만연하고 있다.

물론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이 크게 늘어날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의 경제개입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제가 쇠퇴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많은 나라에서 경험한 사실이다. 우리도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이 헌법에 도입된 1987년 시점부터 많은 ‘경제 민주화’ 조치가 이뤄진 이후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유럽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독일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경기가 급격히 하락, 고실업 저성장 상태에 빠져 ‘유럽의 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1970년대 이후 30년 동안 노동부문의 경직된 제도와 복지국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각종 복지제도 등 소위 ‘경제 민주화’ 조치들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감세와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지출 축소, 연금 및 의료개혁 등을 골자로 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05년 12.5%까지 증가했던 실업률이 올 2월 현재 5.7%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독일은 수년째 주요 7개국(G7)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제는 원리대로 움직인다. 경제를 자유롭게 놔두면 활기가 넘치고 발전하지만 정부가 통제하고 개입하면 위축되고 쇠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정치권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편을 가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 하에 일방적으로 ‘약자’를 이롭게 하는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쪽은 그들이 이롭게 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약자’들이다. 정부의 경제개입이 늘어날수록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이른바 ‘가진 자’와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려는 이면에는 인기영합주의와 ‘가진 자’와 대기업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 부당하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있고,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기업을 착취하거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 적용의 문제이지 법과 제도가 없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벌을 내려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는 견실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소득을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시도는 부를 창출하려는 유인을 파괴해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는 경제논리대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경제활동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논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기영합과 분노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는 구성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술위원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