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6시33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이건희 삼성 회장이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로비에 들어섰다.

포토라인 밖에 서 있던 기자들이 “잠깐 여쭤볼 말이 있다”고 하자 이 회장은 이례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뒤 “뭐라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취재진 쪽으로 다가왔다. 삼성 고위 관계자가 보좌진에게 무언가 사인을 보냈지만 이 회장은 작정한 듯 기자들 앞에 섰다.

“고소를 하면 끝까지 고소를 하고, 내 지금 생각 같아서는 재산을 한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는 이 회장의 말은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또렷했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소송이 제기된 지 두 달 만에 형 이맹희 씨와 누나 이숙희 씨가 낸 유산상속 소송에 대한 속내를 털어놨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내비친 생각은 두 가지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 ‘상속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때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 말씀은 중간에 타협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소송을 낸 측에서 여론의 힘과 반삼성 분위기를 부추겨 삼성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양보를 얻어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 회장이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상황이 정리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회장의 발언은 기자들이 놀랄 만큼 수위가 강했다. 이맹희 씨 등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반응이었다. 그는 “선대 회장 때 벌써 다 분배가 됐고 CJ고 뭐고 각자 다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까 욕심이 나는 것”이라고 말하며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펴기도 했다. 창업주가 물려준 유산은 이 회장 개인이 아닌 삼성그룹의 경영권인데 이를 마치 이 회장이 가로챈 것처럼 소송을 냈다는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구어체로 편히 말하다보니 다소 강한 표현이 있었다”며 “이미 다 정리된 문제를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문제 삼은 데 대해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소송은 개인적 문제로 그룹에서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맹희 씨는 지난 2월 “아버지가 차명신탁한 재산을 이 회장이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삼성생명 주식 등 7100억원대의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냈다. 양측은 법률대변인을 선임하고 답변서를 교환하는 등 법적 다툼에 들어갔다.

김현석 /강창동 기자/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