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건축학개론
지난 주말 모처럼 남편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워낙 개봉한 영화가 많아서 뭘 볼까 고민하다가 요즘 입소문을 타고 있는 건축학개론을 보기로 했다. 재밌는 영화지만 부부나 연인끼리는 보지 않는 게 좋다고 귀띔해준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래도 대세에 따라야 할 것 같았다. 한창 상영 중인 영화라 스토리를 공개하면 안 되겠지만 TV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준 것처럼 남녀의 첫사랑 얘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거기에 건축이라는 소재가 중심이 되어 집을 지어가는 과정 속에서 잊고 있던 풋풋한 과거의 기억들이 간간이 교차되며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서로가 표현하지 못해, 혹은 오해로 인해 상처와 아련함으로 간직된 어린 시절 첫사랑.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누군가는 결혼해 처자식을 둔 아빠로, 누군가는 배불러 있는 엄마로, 누군가는 아직까지 첫사랑을 못 잊고 솔로로, 아니면 이미 한 번 경험을 하고 돌아온 싱글로, 그렇게 각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다. 당시에는 아무리 죽을 만큼 힘들고 방황했더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가슴에 남아 있을 때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에 흡수되는 순간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물론 둘 다 솔로로 남아 있어 다시 시작한다면 아름다운 인연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 첫사랑은 누구였더라?’ 몇 년 전 결혼해서 딸 낳고 잘 산단다. 참 다행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몇 번 흘렀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에 눈물을 흘렸겠지만 나는 다른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건축학개론이란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나온다. 하나는 남녀의 사랑이고 또 하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 영화의 중심인 집을 짓는 이유도 여자 주인공이 아픈 아버지를 위해 하는 일이고,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현실을 고민하는 것도 결국 혼자 계신 엄마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들의 이런 고민과 노력을 뛰어 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며 쳐왔던 피아노를 사주고 싶은 아버지, 아들 장가 보낸다고 평생을 순댓국 팔아서 조금씩 저축해놨던 통장을 내놓으시는 어머니. 그런 당신께서는 20년 전 아들이 버린 티셔츠를 입고 계신다. 당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은 부족한 것 없이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겠지.

몇 달 전 다녀온 네팔의 한 마을, 그곳의 부모들이 생각난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컴퓨터가 필요하다며 난생 처음 본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호소했던 그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절대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가난과 무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의 부모가 똑같지 않을까 싶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박경림 < 방송인 twitter.com/Talkin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