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58년 개띠들’로 불리는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720만명에 달하는 이들 베이비부머는 2~3년 전부터 은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퇴를 맞이하는 이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은퇴를 준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한다는 베이비부머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도 월 평균 저축액은 20만원이 채 안 된다. 대출금은 아직 많이 남았고 여기저기 들어갈 돈은 여전한데 기댈 만한 수입이 변변치 않으니 은퇴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전문가들은 ‘늦더라도 안하는 것보다 낫다’며 하루라도 빨리 생애재무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애재무설계란 무엇인가

생애재무설계는 개인의 생애주기에 따라 재산과 소득, 지출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체 수지를 적자에서 흑자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돈을 좇는 재테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재테크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돈만 많이 벌면 그것으로 끝이다.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이에 반해 생애재무설계는 먼저 돈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목적을 정하고 거기에 맞게 돈을 모은다. ‘내집 마련’이나 ‘은퇴자금 모으기’ 등 구체적인 재무목표를 먼저 설정한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특징이다.

생애재무설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라이프 사이클(생애주기)을 학생기(10~20세) 사회초년기(20~30세) 가정구성기(30~40세) 자녀성장기(40~50세) 가족성숙기(50~60세) 노후생활기(70세 이후) 등 6단계로 나눠 각 주기마다 돈이 필요한 내용과 금액을 결정한다. 대표적으로 결혼, 내집 마련, 자녀 교육, 노후 준비 등이다. 목표는 물론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3년 뒤 결혼자금 3000만원’, ‘10년 뒤 수도권에서 내집 마련’ 등의 식이다.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은퇴자금 마련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은퇴자금은 아직 먼 일이고 나중에 준비해도 되겠지라며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애재무설계에서는 핵심 중에 핵심이다.

◆‘재무 주치의’와 상의해야

목표가 정해지면 자신의 재무 상태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소득, 지출과 함께 재산 내역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계획을 짠다. 자신이 벌 수 있는 돈과 계획을 일치시키고 저축과 투자에 나선다. 이런 과정은 일반인이 스스로 실행하기 어려운 만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재무설계 전문가(FP·Financial Planner)들은 언제나 도움을 환영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솔직해야 한다. 각자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니 남들처럼 해달라는 요구는 ‘어불성설’이다. 전문가가 맞춤형 전략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자산 직업 가족 나이 투자현황 등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생애재무설계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가 믿음이 가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재무 주치의’로 삼고 개인의 신상이나 금융환경에 큰 변화가 닥쳤을 때마다 협의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

◆은퇴자금은 얼마나 필요할까

은퇴자금은 사람마다 씀씀이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콕 집어서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2010~2011년 삼성생명 FP센터를 방문한 고객 50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 조사한 ‘은퇴 후 실제 생활비’를 참고할 만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고 건강검진을 받는 등 안정적인 삶을 누리려면 월 310만원이 필요하다.

한 달 생활비 310만원에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초생활비는 물론 경조사비, 여가비, 차량 유지비 등이 포함돼 있다. 의료비와 식품비 등으로 160만원이 들어가고 의료비 42만원, 경조사 및 모임비 50만원, 중형 이상 차량 유지비 25만원(보험료 및 세금 포함)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부부 건강검진비로 연 100만원, 해외여행비로 연 298만원(동남아시아 2인 평균 여행비 기준)이 추가됐다.

사회적인 품위까지 감안하면 적어도 월 550만원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초생활비만 매달 230만원에다 경조사 및 모임비 월 100만원, 차량 유지비 월 35만원, 골프 라운딩비 월 50만원(2인 기준), 건강검진비 연 200만원 등을 더한 결과다. 유럽 및 동남아 여행비로 연간 990만원씩 쓰는 것도 감안했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기본적인 삶(월 160만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꾸준히 적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소득공제 한도인 월 34만원(연 400만원)씩 개인연금에 넣되 5~10년 단위로 납입액을 두 배가량 늘려 나갈 것을 조언했다.

◆나이와 자산에 맞춰 포트폴리오 구성

나이에 따른 투자 포트폴리오는 보통 ‘100-나이’ 전략을 생각하면 쉽다. 저축이나 투자 전략을 짤 때 ‘100-나이’ 비율만큼을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위험 자산에 배분하는 것이다. 젊을 때는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고 나이가 들수록 위험자산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란 얘기다. 30대 직장인이라면 소득기간이 길고 돈 쓸 곳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자산의 70%를 위험자산에 배분하고 나머지를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에 예치한다.

위험자산 투자에도 수익률과 위험성을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몰빵’은 금물이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면 개별 자산이 갖고 있는 고유한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일찍 시작해야 복리의 마술 펼쳐진다

생애재무설계에서 시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복리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률이 연 6.5%인 월복리 예금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예금상품에 1억원을 10년 동안 예치할 때 원리금은 원금의 두 배에 가까운 1억9121만원이 된다. 30년을 묻어 둔다면 원금의 7배인 7억원까지 불어난다. 50년이면 25억원이 넘는다. 최초 원금 1억원의 두 배인 2억원이 되는 데는 10년이 조금 넘게 걸리지만 원금의 세 배인 3억원이 되는 것은 그로부터 7년이면 된다. 4억원은 다시 4년만 필요하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눈덩이처럼 돈이 불어나는 ‘스노볼 효과’. 이것이 복리의 마술이다.

오죽하면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을 때 기자들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복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말이 전해지겠는가. 석유왕 록펠러도 “복리는 세상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논란이 있지만 복리의 효과를 강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화들이다.

복리효과를 계산하려면 ‘72’만 기억하면 된다. 72에서 금리를 나눈 숫자가 원금의 배수가 되는 대략적인 투자 기간이다. 연 6.5%의 경우 72를 6.5로 나눈 11년이 원금의 두 배가 되는 기간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