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의 저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참회록》에서 젊은 시절 거짓말로 한 여성을 모함한 뒤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라 로크 백작 집에서 일할 때 분홍 리본 하나를 훔쳤다 들키곤 수치심에 마리온이란 소녀에게 덮어 씌웠다는 것이다.

“착하고 분별 있는 마리온의 ‘그러지 마라’는 눈물 어린 호소에도 불구, 나는 그녀가 리본을 줬다고 우겼다. 그녀의 온건함과 내 단호함이 비교됐는지, 한쪽만 악마같이 뻔뻔하긴 어렵다고 봤는지 상황은 내게 유리했던 듯하다. 함께 쫓겨났던 것이다.”

루소의 얘기는 거짓말의 속성과 위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거짓말일수록 소리는 크고 또렷하다. 심지어 진지하기도 하니 설마 하던 사람들조차 ‘그럴 수도 있겠다’ 쪽으로 기운다. 작심하고 한 거짓말의 진위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고, 누군가 책임지고 끝까지 추적하는 일도 드물다.

규명해봤자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기 일쑤다. 우리 사회 곳곳에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이 수두룩한 배경이요, 선거 때만 되면 ‘아니면 말고’ 식 거짓말이 판치는 이유다. 정치적 거짓말은 사흘, 아니 한 시간만 신뢰를 받으면 그것으로 제 구실을 다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셈이다.

4·11 총선이 끝났다. 개인에 대한 중상은 늘 있던 것이지만 이번엔 특정 지역 투표율을 과장, 계층 갈등을 부추기는 황당한 거짓말까지 튀어 나왔다. 선거 당일 트위터 등에 퍼진 ‘강남 타워팰리스 오전 투표율 78%. 기득권 지키기에 필사적’이란 게 그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수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보면 사실 여부를 금세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 소위 유명인사란 이들까지 검증 없이 정치적 색채를 섞어가며 퍼 날랐다. 선관위에서 확인한 해당 지역 투표율은 오후 1시에 38.2%와 38%였다.

투표율이 최대 변수인 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꼼수였다는 건데 과연 그 효과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길 없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이 판칠 수 있는 세상, 그런 거짓말에 기대서라도 권력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넘치는 사회는 무섭다.

‘거짓말은 날아서 오고, 진실은 그 뒤를 좇아 절뚝거리며 온다’지만 거짓이 영원한 법은 없다. 정치적 목적은 물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술과 모략을 일삼는 이들에게 루소의 참회가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다. “라 로크 백작은 우리 둘을 다 내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 있는 자의 양심이 죄 없는 자의 복수를 충분히 해줄 것이다.’ 그날 이후 그 예언이 이뤄지지 않고 지나간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