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 "여성들의 섬뜩한 복수…'무서운 매력' 있죠"
“여성 감독이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산정호수의 맛’의 부지영 등 재능있는 후배들이 늘고 있어요. 임순례 감독이나 저보다 섬세하게 만들어요.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6일 관객 240만명을 돌파한 영화 ‘화차’의 변영주 감독(46)은 몇몇 여성 감독 유망주들을 거론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에 성공한 여성 감독은 아직 드물다. 2007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이후 5년 만에 변 감독이 해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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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전작 ‘밀애’(2002년)와 ‘발레교습소’(2004년)는 실패했다. 여성 감독들이 상업성에 취약한 이유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저마다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다보면 입지가 점차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화차’가 역대 여성 감독들이 다룬 이야기 중 가장 강한 것은 분명하다. 이 영화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것. 주인공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실종된 여인을 찾아나섰다가 여인의 신분이 가짜였고, 끔찍한 살인사건과 연루돼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원래 살인 등을 다룬 장르문학을 좋아해요. 범죄세계를 그린 느와르 영화도 좋아하고요. 장르영화는 관객에게 다가가 속삭일 수 있는 게 강점입니다. 장르의 규칙에 따라 풀어내면 센 주제로 이야기해도 관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여요. 이야기를 확장하기도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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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재미야말로 첫 번째 흥행 비결이라고 했다. 관객들이 문호(약혼남)나 종근(전직 형사)의 시선으로, 혹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봐도 즐길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약혼녀를 잃은 문호 입장에서는 멜로이며 종근 입장에서는 수사극이다. 실종녀 관점에서는 한 여성의 슬픈 인생과 비뚤어진 욕망에 대한 미스터리물이기도 하다.

“예전 영화에서는 피해 여성이 깡패를 통해 세상에 복수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잔혹해졌어요.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를 잡아먹는 비정함을 보이니까요. 무서운 매력이죠.”

원작 소설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내 이웃의 누군가가 다른 이로 대체된다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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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녀 역 김민희도 잠재력을 보여줬어요. 관객들은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가 뭔가 해내는 것에 대해 굶주려왔죠. 흥행작은 대부분 남자들이 뭔가를 행동하는 내용이잖아요. 김민희는 클로즈업을 해도 더 궁금해져요. 다 본 느낌이 아니고 뭔가 또 있을 듯하죠. 촬영장에서도 ‘오늘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는 타입이더군요.”

전작 ‘밀애’와 ‘발레교습소’에서 쓴 잔을 마신 이유도 털어놨다.

“그때는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부족했어요. 한 가지를 잘 한다고 영화가 잘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밀어붙여야만 관객들이 좋아하는데 말이죠. ‘밀애’는 더 섬세하게 만들어야 했고, ‘발레교습소’는 더 많은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줘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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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관객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좀 더 사려깊어졌어요. 이야기를 풀어낼 때 멋지고 센 한 마디로 끝내는 게 아니라 조근조근 여러가지 말로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죠.”

오랜 기간 독립영화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점도 짚었다.

“독립영화는 감독이 어떻게 보느냐하는 진정성이 중요하다면 상업영화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변영주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줘야 합니다. ‘화차’에서는 모든 관객들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요. 장면의 리듬과 배치 등을 통해 관객들이 인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거죠.”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공부를 못해 전공을 살릴 길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멋이라도 있겠다 싶어 중앙대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얘기했다. 1989년부터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고 1995년 극장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