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인도네시아 특산물인 ‘르왁커피’를 선물 받았다. 향도 좋고 맛이 부드러운 데다 저녁에 마셔도 수면에 지장이 없어 한번 맛을 보면 다시 찾게 되는 명품 커피다. 그런데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권하기에는 조금 머뭇거리게 된다. 그 이유는 야생 사향 고양이가 잘 익은 커피체리만 골라먹은 후 배변한 커피를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동물이 수고한 대가로 미각이 호사를 누리는 것 중에 제비집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제비집 요리는 제비가 해초를 물어와 침과 섞어 절벽에 집을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채취해서 만든다. 피가 섞이면 더 고급품으로 친단다.

주식투자도 가만히 따져보면 르왁커피나 제비집 요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손실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기업이 열심히 기업 활동을 해서 벌어들인 수익을 배당이나 주가 상승이라는 형태로 이익을 취하게 된다. 결국 수고는 기업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하지만 그 열매는 주식 투자자가 나눠 갖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커피나 해초를 직접 채취해서 먹는 것보다 중간에 사향고양이나 제비가 개입되면 원재료보다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글로벌 자본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글로벌 주식시장이 강세였던 배경에는 미국 주택시장의 호황을 통한 과소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이머징 시장의 고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미국의 주택시장 관련 산업들은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머징 시장의 성장과 관련 있는 기업들은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마치 수고는 고양이나 제비가 하고 그 과실은 사람이 누리듯이 우월한 인프라와 인적자원을 활용해 이머징 시장의 성장 과실을 자신의 부가가치로 만드는 글로벌 기업들은 경제위기 와중에도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불도저로 유명한 미국 캐터필러는 2011년 전체 매출의 64%를 신흥국에서 거뒀다. 이 회사는 중국의 건설 및 광산채굴분야 장비의 강자로 등극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에 진출한 미국의 카지노 기업 라스베이거스 샌즈는 전체 매출 중 신흥국 비중이 82%가 넘는다. 자회사인 샌즈차이나의 2011년 순이익은 무려 69%나 증가했다. 세계적인 명품업체 에르메스는 유로존 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한 해 동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의 매출이 34%나 늘었다.

앞으로 성장하는 지역과 그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는 기업이 누구일지가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그 과실의 최대 수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뛰고 있는 한국기업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부드러운 르왁커피를 마시면서 이머징 시장으로부터 성장의 동력을 만들고 있는 기업들을 생각해 본다.

조웅기 <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cho@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