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내부일감 中企참여 늘려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광고·물류·시스템통합(SI) 등의 분야에서 이뤄지는 대기업들의 거래에 대해 ‘모범 기준’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행정지도에 나섰다. 재벌그룹 소속사의 거래 상대방 선정 등과 관련한 거래방법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동일그룹 내부의 부당한 지원을 차단하고 중소기업들의 사업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거래 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을 발표했다. 대기업들이 광고, 물류, SI 등과 관련한 일감을 다른 기업에 맡길 때 계열사가 아닌 중소기업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라는 것이 골자다.

공정위는 ‘모범기준’의 기본 원칙으로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행위 금지 △비계열 독립기업에 대한 사업기회 개방 △거래상대방 선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광고·물류·SI분야 등에서 다른 기업에 일감을 맡길 때 수의계약 대신 경쟁입찰을 확대하도록 했다. 대기업 내에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해 계열 기업과 대규모 수의계약을 맺을 땐 사전에 계약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마련토록 했다. 대기업이 일감을 중소기업에 발주할 때도 계열사가 끼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사실상의 경영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의 주장대로 ‘자율 기준’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원칙만 제시하면 될 일인데 계약 방법의 구체안까지 일일이 내놨다는 것. 실제 공정위는 내부거래위원회를 구성할 때 3인 이상이어야 하며, 그중 3분의 2 이상은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한편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모범 기준 발표에 앞서 오전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사장, 서경석 GS 부회장, 서용원 대한항공 수석부사장, 신은철 대한생명 부회장, 이재경 두산 부회장 등 6개 대기업 그룹의 수석부회장급 임원들과 만나 개별 그룹의 일감몰아주기 대책을 촉구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이후 “모범 기준에 대한 준수 여부는 어디까지나 기업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모범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은 이날 오후 경쟁 입찰과 중소기업 발주 확대 등 공정위가 제시한 모범 기준을 준수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