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잃어버린 10년'…럭셔리카 명성 찾을까
우여곡절 끝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5일 발효됐다.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산 자동차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를 봤다. 그동안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에 밀려 판매량이 바닥을 쳤던 미국 브랜드들은 이 기회를 노리고 앞다퉈 가격 인하를 발표하며 판매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들 브랜드 중에 캐딜락의 행보가 눈에 띈다. 캐딜락은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인 제너럴모터스(GM)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포드의 링컨도 프리미엄 브랜드이지만 판매량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캐딜락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즉 캐딜락은 자동차 왕국인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것이다.

캐딜락은 이번에 국내에서 100만~400만원까지 가격을 내렸다. 4000만원대부터 1억2000만원대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비하면 체감 인하폭은 적을지 몰라도 가격이 내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캐딜락에 대한 인지도는 높다. 캐딜락은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시절부터 백악관 전용차로 쓰이고 있다. 구한말 고종황제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의전 차량으로 캐딜락을 즐겨 탔다.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브랜드였다. 오늘날 20~30대 젊은층 가운데에서 캐딜락을 모르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이는 곧 캐딜락의 판매량이 인지도에 한참 못 미치는 모델이라는 의미도 된다.

한때 캐딜락은 영국 롤스로이스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세계 3대 럭셔리카로 꼽혔다. 1990년대 들어 BMW와 아우디의 약진에 밀려 ‘옛 영광의 브랜드’로 전락했다. 이에 캐딜락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디자인이다. 캐딜락은 1998년 ‘아트&사이언스’라는 디자인 철학을 내놓으면서 기존의 디자인을 완전히 탈피해 모던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첨단기술과 그에 걸맞은 디자인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캐딜락 디자인이다.

캐딜락의 변신은 디자인에만 그치지 않았다. 독일 브랜드를 깨려면 막강한 성능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형 고성능 세단 ‘CTS-V’이다. 양산형 4도어 세단 가운데 세계 최초로 ‘명차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드슐라이페 서킷 랩타임을 7분대로 끊어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공식 기록은 7분59초32. 6200㏄짜리 8기통 슈퍼차저 엔진은 556마력의 출력을 뿜어낸다. 독일 브랜드를 잡기 위해 개발한 차량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캐딜락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미국의 슈퍼볼 대회 광고에서 캐딜락은 뉘르부르크링을 내달리는 ‘ATS’의 영상을 내보냈다. ATS는 콤팩트 스포츠 세단으로 BMW 3시리즈와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와 경쟁구도를 형성할 모델이다. 캐딜락은 공공연하게 “BMW를 잡으려고 만들었다”고 출사표를 던졌으며, 독일 3사 모두와 맞서기 위해 후륜구동과 4륜구동 두 개의 라인업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캐딜락은 17세기 말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프랑스 장군 앙트완 모스 카디야(Cadillac) 경의 성을 딴 것이다. 1902년 첫 차를 내놓은 캐딜락은 올해로 창립 110주년을 맞는다. ATS는 올해 미국에서 7월께, 국내에는 10~11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BMW 신형 3시리즈가 전 세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여름 캐딜락 ATS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일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