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18] 따가운 여론…진보 도덕성 '타격'…뒤늦게 야권연대 살리기 '고육책'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결국 23일 출마를 접었다. 자신과 진보진영 전체에 쏟아지는 비난여론을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상처뿐인 버티기였다. 진보진영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야권연대를 어렵사리 성사시킨 주역인 이 공동대표는 자신의 경선 조작 논란으로 깨질 위기에 놓인 야권연대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도 강하다.

이 대표의 사퇴엔 당 안팎 인사들의 압박이 작용했다. 전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 원로로 구성된 ‘원탁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향한 헌신과 희생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 대표에게 간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통합당도 간접적인 압박을 계속했다.

진보당은 ‘사퇴불가’를 고집했다. 이에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부산에서 올라와 긴급 중재에 나섰다. 문 고문은 이 대표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난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진보당 내 여론도 사퇴 쪽으로 기울었다. 진보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악을 불씨가 다른 야권연대 지역으로도 퍼지는 등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자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도 이 대표에게 야권연대를 회복할 방법을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야권연대 단일화 합의를 이루지 못한 선거구의 진보당 후보들은 자진해서 용퇴를 선언했다. 이혁재(인천 연수) 우현욱(서울 동대문갑) 남희정(서울 성동을) 후보는 이날 연쇄 기자회견을 열고 “범야권 단일후보들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양당 지도부의 결단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이런 당 안팎의 요구와 비난 여론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는 관악을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사퇴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2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야권연대가 경선불복으로 흔들리고 있다”며 민주당을 압박하면서도 “빌미를 준 제 잘못이 크다.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라고 착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날 사퇴 회견 전까지 이 대표는 줄곧 사퇴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엔 경기 동부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당내 주류세력이 이 대표의 사퇴를 완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사퇴하면 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옛 민주노동당 주류 당원들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이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무엇보다 도덕성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진보진영이 이번 사태로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난받은 것은 이 대표의 정치 인생에 두고두고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후보직을 사퇴함에 따라 야권 연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함에 따라 공석이 된 관악을과 부정선거 시비에 휩싸인 경기 안산 단원갑 지역을 통합진보당에 양보하기로 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한 관악을 지역은 새로운 후보로 교체되면 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이 대표가 사퇴를 선언한 직후 전국운영위원회 회의 등을 열어 이상규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을 후보로 확정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