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알칼리
코난 도일의 첫 추리소설 ‘주홍색 연구’의 2부 첫장 ‘알칼리 대평원에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끝난 데를 알 수 없는 모래 바다는 겨울에는 흰 눈으로 빛나고, 여름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먼지에 뒤덮여 잿빛이 된다.”

미국 서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네브래스카주 사이 사막지대를 묘사한 것이다. 염호(鹽湖)인 유타주 솔트레이크 주변 지역은 멀리서 보면 눈이 쌓인 듯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소금가루 천지다. 알칼리 대평원이란 이름이 소금과 연관이 있는 셈이다.

알칼리(alkali)는 아랍어로 관사인 알(al)과 재를 뜻하는 칼리(kali)가 합쳐진 말이다. 나트륨 칼륨 등이 함유된 식물을 태운 재를 가리켰다. 이것이 일반화돼 재 추출물처럼 염기성을 띤 물질을 총칭하게 됐다. 알칼리 물질은 물에 잘 녹아 수산화물 형식을 띤다. 흔히 양잿물로 불리는 수산화나트륨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산화나트륨(NaOH)에 강한 산성인 염산(염화수소·HCl) 용액을 섞었을 때 나타나는 중화 반응이다. 수산화나트륨의 OH-가 염화수소의 H+와 결합해 물(⑪)이 되고, 나머지 Na+와 Cl-가 합쳐져 소금(NaCl)이 된다. 염기와 산의 대표격인 두 독성물질이 섞여 인체에 필수적인 물과 소금으로 바뀌니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인체도 이런 화학적 신비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인종, 피부색, 나이에 관계없이 몸속 수소이온 농도(pH)가 7.4 안팎으로 균일하다. 중성(pH 7.0)에 가까운 약(弱)알칼리성이다. 혈액의 pH가 0.2 이상만 달라져도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한다. 건강은 곧 ‘산-염기 평형’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식을 고루 먹는 것이야말로 산-염기 평형을 도모하는 길이다.

국내에선 몇 해 전 알칼리수의 효과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다. 식약청이 나서 알칼리수가 암 당뇨 고혈압 아토피 치질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광고는 허위라며 35개 업체를 고발하기도 했다. 위산 과다 환자도 아니면서 pH 9 이상인 알칼리수를 정수기 물 마시듯 계속 마시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는 설명이다.

최근 소주 ‘처음처럼’이 내세운 알칼리 환원수에 문제가 있다는 루머가 돌아 해당 업체가 곤욕을 치렀다. 업체 측은 허용기준(pH 5.8~8.5)에 부합되는 안전한 물이라며 음해행위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주를 만들면서 강한 알칼리성 물을 썼을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알칼리, 미네랄, 천연, 유기농 등의 용어를 너무 맹신하는 사회 분위기다. 뭐든 지나쳐서 좋을 게 없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